[해외] 100차 몽골-강동기 학생

콤스타
202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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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의료봉사 일기

8월 7일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울산을 떠나 몽골을 향했다. 도착을 하니 모든 곳이 컴컴했다. 나는 아빠가 하루는 시차 적응을 위해 쉰다고 해서 편했는데 갑자기 바로 한다고 해서 솔직히 조금 놀랬다. 나는 의료봉사로 아빠를 따라 가는게 처음이라서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누나와 아빠에게 많이 의지하려고 했지만 결국은 혼자 모든 것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묵을 호텔로 갔다. 그때 날씨는 완전 겨울 같았다. 나는 황급히 잠바를 꺼내 입었다. 아빠 말로는 우리가 묵은 징기스칸 호텔이 가장 좋은 호텔이라고 했다. 나는 우리 방이 주어지자마자 씻고 바로 잤다. 내일을 위해 화이팅!!

8월8일 아침에 우리는 아침을 먹고 바로 버스를 타고 우리가 의료 봉사를 할 병원으로 갔다. 나는 처음에 다 같이 한방병원에서 하는 줄 알았는데 팀을 나누어서 각자 병원을 맡는 것이었다. 우리는 파견 팀이 되었고 결국 꼬불꼬불하고 거친 도로를 지나 어느 학교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가자마자 약품들을 점검 했다. 나는 처음 약방을 하고 싶었지만 다른 누나들이 해서 나는 그냥 안내를 했다. 나는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서 그냥 시키는 대로 하기로다. 첫 번째 날은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체험 하듯 했다. 나는 원래 이렇게 쉬운 줄 알았는데 나중에 들으니까 그때는 처음이라 환자들이 많이 없었던 거란다.

다음날 우리는 다시 그곳을 가게 되었다. 한번 왔던 곳이라 그렇게 낯설지 않았다. 나는 어제처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또 안내를 했다. 항상 움직이고 뛰어다니고 하다 보니 다리가 아파졌다, 그래서 아빠 한테 말했더니 누나하고 역할을 바꾸어 주었다. 나는 약방으로 갔다. 그리고 다른 누나들은 음악수업을 하러갔다. 누나와 나는 우리까지 가면 일손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따라가지 않았다. 처음 약방에 갔을 때 나는 몇 몽골어를 배웠다. 안녕하세요(센배노}, 이걸 보세요, 내일 다시 오세요 등등 이었다. 약방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중간에는 몇 몽골 사람들이 몽골어로 뭐라고 말하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누나는 내일은 다른 누나들과 같이 음악수업을 따라가겠다는 의지와 함께 하루가 또 저물었다.

3일째 되는 날 누나는 결국 음악(리코더)수업을 따라가게 되었다. 나는 아빠와 함께 진료를 참여 하며 아빠의 봉사 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점심이 되니까 모두들 돌아왔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우리는 몽골 사람들과 함께 농구를 했다. 나는 농구를 하면서 몇 번이고 넘어졌다. 그쪽은 운동장이 돌판이라서 넘어지면 피나는 것은 기본 이었다.

마지막 날 우리는 최종 마무리를 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가족 수 마다의 구충제를 주고 약도 넉넉하게 주고몽골 친구들과 이별을 했다. 이렇게 아쉽고 아쉬운 진료 시간이 끝났다. 다음에도 또 오고 싶다.

인도주의 실천, 나눔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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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STA는 의료환경이 열악한 ODA 대상국 주민들을 위해 해외의료봉사단을 파견하고 있으며, 

파견국에서 학술교육 세미나, 임상교육 등을 통해 우리나라 고유의 한의학을 알리고 교육하는데 힘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