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100차 몽골-정진원, 정진휘 학생

콤스타
2020-05-19
조회수 512


몽골 해외 의료 봉사를 다녀와서
대전 오류초등학교 3학년 1반 11번 정진휘, 5학년 2반 정진원

2010년 8월 7일 토요일 날씨 : 맑음
인천공항에서 징키스칸 공항까지
인천공항에서 배고파서 햄버거로 징기스칸 공항에 도착
간단히 식사
제 100차 콤스타 몽골 한방의료봉사를 온가족이 가게 되었다. 8월 7일부터 15일까지 8박 9일 일정으로 가게 되었다. 몽골에 거주하는 현지주민 및 교민 이천명에게 의술을 베풀기 위해서 머나먼 몽고까지 출발~~~
교수님, 박사님, 레지던트 선생님 한국의 유명한 한의사선생님과 식구들까지 모두 60여명의 가족이 출발하였다.
인천공항을 오후 6시에 출발하여 몽고의 수도 울란바트로 공항에 9시에 도착하였다.
공항에 도착했는데 의약품 검사를 너무 까다롭게 해서 2시간 넘게 검사를 했는데 마침내 우리들의 의약품이 통과되었을 때는 환호성을 지르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몽고는 우리나라보다 위에 있어서 그런지 너무 춥고 비가 와서 오들오들 떨었다. 우리 한국 사람만 반팔을 입고 있었지 몽고사람은 털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옷을 잘 입고 있는 몽고 사람이 부러웠다. 그런데 어떤 의사선생님 형은 쪼리를 신고, 나시를 입고 벌벌 떨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엄마가 잠바를 챙겨줘서 그마나 다행이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차로 이동하는데 가로등이며 불빛이 없어서 밖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가 않아서 너무 아쉬웠다.
엄마가 그러시는데 몽고는 전기가 귀해서 밤에는 전등을 잘 켜지 않는다고 했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느라 힘이 들었는데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가족은 오리엔테이션 설명을 듣고 모두 쓰러져 잠을 잤다.
식구가 다섯명이라 가장 좋은 방인 커넥트룸에 자게 되었다. 이렇게 좋은 호텔방은 처음이었다. 부모님하고 선아하고 같은방, 나하고 형하고 같은 방에서 잤다.
내일부터 의료봉사를 하게 되는데 기대가 된다.

2010년 8월 8일 일요일 날씨 : 비바람
의료봉사 첫째날: 야호 의료봉사 시작이당!!!
모든 똑같은 콤스타 옷으로 갈아입고 병원으로
가기 전에 호텔앞에서 한 컷

의료봉사 첫째날, 환자들을 위해서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새벽부터 일어나 밥을 먹고 비얀골 구립병원으로 향했다.
오늘도 역시나 찬바람이 풀고 추었다.
‘옷을 잘 챙겨입고 올걸’하고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었다.
우리가 의료봉사를 하기 위해 간 병원은 비얀골 구립병원이었다.
그 병원은 병원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낡았고 이상한 냄새가 났다. 한국에서 의료봉사단이 온다고 모든 복도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꽉꽉 채웠다. 정말 아빠를 비롯한 모든 한의사선생님들이 훌륭하게 느껴졌다.
먼저 방마다 몇 분씩 조를 이루어 진료를 하게 되었다. 우리아빠는 3층 진료 팀장이었다.
그리고 난 아빠의 조수로 아빠의 심부름을 하게 되었다. 진료차트 가져오는 것, 약 심부름, 소독약 심부름, 이런 저런 심부름을 쉴새없이 하였다.
겨우 점심시간에 쉬게 되었는데 아빠는 점심을 먹자마자, 환자를 봐야한다고 또 진료실로 가셨다. 그래서 나도 쉬지도 못하고 따라 갔다. 정말 우리 아빠는 대단하다.
아빠는 겨우 저녁에야 진료를 마치시게 되었는데 하루밖에 진료를 하지 않았지만 너무 피곤하다고 하셨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한방 진료를 받기 위해서 일부러 먼 곳에서 오신 분들을 위해서는 쉬지 않고 진료를 하셔야 한다고 하셨다.
아빠가 존경스럽고 나도 아빠처럼 훌륭한 의사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2010년 8월 9일 월요일 날씨 : 흐림
의료봉사 둘째날: 한국의 의술을 몽고에 베풀다.
아빠의 통역을 맡은 뭉척과 함께, 뭉척은 한국말을
너무 잘해서 아빠가 칭찬을 많이 했다.

의료봉사 둘째날, 아침 일찍부터 비얀골 병원에 도착했는데 어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도 저 사람들의 심부름을 다 해야 한다는 생각에 쓰러질 것 같았다.
환자들이 어제 침을 맞고 다 나았다고 신기하다고, 친구들이며, 친척들 모두 다 데리고 왔다. 갓난아이부터, 할머니들까지 이루 말할 수 없이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아빠통역을 맡은 뭉척은 몽고의 국립대학교 한국어과에 다니는데 한국에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다는데 한국말은 너무 잘했다. 그래서 아빠가 뭉척 칭찬을 아주 많이 하셨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빠는 쉬는 시간도 갖지 못하고 계속 침을 놓았다. 결국 점심을 먹고 아빠가 기침을 하며 쓰러지려 했다.
아빠 진료실에 들어오신 교수님이
“의료봉사도 중요하지만 정원장 몸부터 챙겨” 라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아빠는 잠깐 쉰 다음에 계속 진료를 했다.
아빠 침의술이 좋아서 병원의 높은 관계자도 아빠 침을 맞으려고 줄을 섰다. 아빠 화이팅!!!

2010년 8월 10일 화요일 날씨 : 흐림
의료봉사 셋째날: 병원이 메워 터지다.

뭉척과 좋은 친구가 되었다. 가장 행복한 시간은
쉴 수 있는 밥 먹는 시간

의료봉사 셋째날, 오늘도 병원이 아주 시장통이다. 이틀 진료를 하니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왔다. 나의 체력도 바닥이 나서 거의 기진맥진 했다. 그런데도 모든 한의사선생님들은 힘든 기색도 하지 않고 팔을 걷어 부치고 진료를 하셨다.
가장 행복한 시간은 밥 먹는 시간이다. 밥 먹는 시간만이 쉴 수 있었다. 점심은 인근 호텔 식당에서 먹었는데 한국식으로 나와서 좋았다.
열심히 봉사하니까 밥 한 그릇도 뚝딱, 엄마께서 밥돌이라고 하시면서 많이 먹어야 봉사도 더 잘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밥을 먹고 점심 진료를 하는데 눈이 가물가물 거리고 힘들어서 엄마가 계시는 약재실로 들어와서 좀 쉬는 시간을 가졌다.
내 여섯 살짜리 막내 동생도 약재에 번호를 매기면서 엄마를 도와드리고 있었다. 엄마도 힘들어하시지만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침을 한 번 맞기 위해 두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고 참으라고 하셨다.
내일까지 의료봉사를 해야 하는데 좋은 일을 하는데도 내가 힘드니까 잘 모르겠다.
내가 제일 기다리는 저녁식사시간이 돌아왔다. 서울식당이라는 곳을 갔는데 돼지갈비도 맛있었고, 냉면도 맛있었다. 역시 일하고 먹는 저녁은 꿀맛이었다.
드디어 저녁에 호텔에 돌아오는 차안에서 엄마는 코피를 흘리고 아빠는 계속 기침을 하시고 힘들어 하셨다.
아무튼 끝까지 힘을 내서 의료봉사를 잘 마무리하고 싶다.


2010년 8월 11일 수요일 날씨 : 맑음
의료봉사 넷째날: 의료봉사를 마치며
아빠를 도와준 통역을 도와준 분들과 함께
아빠가 열심히 진료하시다 병이 나서 많이 힘들어하셨다.

의료봉사 넷째날, 마지막 의료봉사날이다. 오늘도 열심히 아빠 심부름을 했다.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열심히 심부름을 하려고 했는데 무슨 오해가 생겨서 진료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기다리던 환자들은 진료를 받고 싶어서 집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계속 복도에서 기다렸다. 그런 모습을 모고 몽고 구립병원 의사선생님이 집으로 가라고 소리를 쳤다.
너무 속상하고 아쉬웠다. 먼 곳에서 진료를 받으로 온 분들에게 그렇게 대하다니……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났다.
마지막에 구립병원에서 모든 분들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모두 같이 버스를 타고 한몽친선병원으로 갔다.
그곳에서 모두 다 모여 간단한 식사를 하고 두 팀으로 나뉘어서 몽고 체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진료했던 분들과는 헤어지고 새로운 식구들과 함께 몽고의 문화체험을 위해 같은 버스에 탔다.
관광버스를 타고 출발하였다. 그리고 밤12시에 관광버스 기사가 사막가운데에 있는 게르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몽고의 전통가옥 게르에서 몽고에서 좋은 게르라고
하지만 난 우리집이 좋다.

게르촌 정문에서 우리 게르까지 가는데 별빛에 의지해서 갔다. 북두칠성이 뚜렷하게 보이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그러나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비바람이 몰아치고, 너무 추운 잔혹한 밤이기도 했다. 게르에 눕자마자 눈이 감기고 피곤했다. 게르는 양털로 만들었는데 따뜻했지만 사막의 바람이 너무 거세서 천막이 날아가는 것 같았다.
말똥이 난로 연료였는데 30분만에 다 타서 우리는 밤새 추위에 벌벌 떨었다. 아빠는 계속 우리들 감기 걸리다고 일어나셔서 옷을 입혔다.
아 정말 아름답지만 잔혹한 밤이다.

2010년 8월 12일 목요일 날씨 : 비바람
몽고체험 첫째날: 고비사막에서 낙타와 함께

게르에서 아침을 게르의 아침 식당

몽고체험 첫째날, 아침에 일어나니 정말 사막 한가운데 게르만 달랑 있었다. 이리 봐도 초원, 저리 봐도 초원, 우리나라는 집이 다닥 다닥 붙어있는데 몽고는 정말 넓은 나라인가 보다.
그 넓은 사막에 게르만 있었다. 아침을 스프에 빵을 먹고 고비사막으로 출발했다. 사막까지 다시 네 시간을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면서 네 시간동안 보이는 것은 게르, 양 떼, 말 떼, 풀밭이 다다. 몽골 사람들은 정말 걸어서는 못 다닐 것 같다. 끝도 없이 초원이다. 그래서 말을 타고 다니나 보다.
고속도로에 화장실이 없어서 차가 서면 사람들이 다 풀밭에서 볼 일을 봤다. 그러니까 풀밭이 거대한 화장실이다. 나도 풀밭에 실례를 했다.
와 정말 우리나라가 정말 좋은 나라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속도로에 휴게실도 없어서 물도 못 사먹고 계속 풀밭만 보고 달려서 고비사막에 도착했다. 버스를 오래 타서 그런지 머리가 많이 아팠다.
우리가 도착한 게르의 모든 화장실과 샤워들은 “물을 아껴 쓰세요”라는 말이 있었다. 이곳은 물이 너무 귀해서 물을 돈처럼 아낀다고 했다.
낙타 타기는 재미있지만 너무 울렁거린다.
점심을 먹고 낙타를 탔다. 한 일가족이 낙타를 끌고 왔다. 낙타는 재미있지만 많이 울렁거렸다. 우리는 사막에서 낙타를 탔지만, 가이드와 몽골인은 모래 바람을 맞으며 낙타를 끌어주었다. 나만한 아이가 내 낙타를 끌어 주었다. 참 고마웠지만 몽고말을 몰라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못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낙타를 탔는데 다음에는 나 혼자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밤도 비바람과 맞서며 게르에서 잠을 청했다. 오늘 연료는 나무였다. 나무는 말똥가 달라서 타는 시간이 좀 길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빠는 또 밤새 나무를 넣느라 잠을 못자고 계속 일어났다. 바람이 멈추고 따뜻하게 잤으면 좋겠다.

몽고에서 장관도 묵었던 게르라지만 우리와 함께 한 형들과 동생
‘게르는 게르다.’

2010년 8월 13일 금요일 날씨 : 비바람
몽고체험 둘째날: 하르호른에서
하르호른의 옛 성터에서 크기가 예전의 10분의 1도 안된다고 한다.

몽고체험 둘째날, 몽고의 옛 수도인 하르호른에 갔다. 예전에는 이곳으로 조공이 끊이지를 않았고 굉장히 넓은 곳이라고 했다.
그런데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세워진 후에 원나라에 대한 복수로 이곳을 다 무너뜨렸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예전의 10분의 1도 안되는 크기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사원으로 들어가니 라마불교에 대한 사원이 지금도 잘 남아있었다.
우리나라의 인자한 부처님과는 다르게 부처님이 화려하게 옷을 입었고, 부처님이 좀 사나워 보였다. 역시 부처님도 한국 부처님이 가장 멋있고 인자한 것 같다.
사원을 둘러 볼 때 너무 비바람이 몰아치고, 추워서 구석구석 돌아보지 못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그래도 춥다고 버스에 있는 선생님들이 많았는데 나는 추위를 무릅쓰고 내려서 관람을 했다.
다음에 몽고에 다시 오게 된다면 꼭 이곳을 다시 살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사원을 나오면서 몽고 부처님에게 나중에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2010년 8월 14일 토요일 날씨 : 맑음
몽고체험 셋째날: 국립공원 테레지로
말을 타러 테레지 국립공원으로 왔다.
말타기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몽고체험 셋째날, 몽고에 있는 국립공원 테레지로 버스를 9시간 타고 이동했다. 자서 깨어나도 초원, 또 자고 일어나면 양 떼, 졸다 깨나면 파란 하늘 정말 태어나서 이렇게 차를 오래 탄 것은 처음이었다.
테레지 국립공원은 산에 나무가 있고 몽고에서 귀한 물이 흐르기 때문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라고 한다. 테레지 국립공원에 들어가는 순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웠다.
그 곳에서 우리는 말타기 체험을 했다. 초원에서 산을 보며 말은 타는 느낌은 정말 끝내줬다. 몽고에서 가장 기분 좋은 추억이었다.
몽고에서 말을 잘 못하면 몽고인이 아니라고 했다. 그만큼 몽고인들은 말을 잘 탄다고 했다.
나도 말을 타고 가다가 혼자 탈 수 있을 것 같아서 몽고말로
“체, 체”하고 말에게 재촉 했더니 말이 달렸다.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말을 타고 있는 느낌은 ‘와’ 그동안 게르에서 힘든 기억들, 궂은 날씨 등으로 서운한 것들이 다 지나가는 것 같았다.
가이드와 우리 일행 모두 2시간 동안 몽고의 초원을 달렸다.
말을 잘 타는 젊은 선생님들은 초원을 바람과 같이 달렸다. 아빠도 가이드 없이 말을 탔다. 난 아직 어려서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했지만 몽고에서 말을 탄 추억은 잊지 못할 것 같다.

2010년 8월 15일 일요일 날씨 : 맑음
몽고체험 넷째날: 박물관을 보고 인천공항으로
몽고에서의 마지막날은 박물관을 보왔다.

몽고에서 마지막을 이젠 한국으로 와야 할 시간이다. 몽고를 떠나려고 하니 몽고의 하늘이 맑아졌다. 왜 오늘에서야 날이 맑은지 속상했지만 끝까지 몽고를 느끼기로 했다.
마지막 코스로 울란바트로에 있는 역사박물관을 갔다. 몽골의 박물관을 가니 몽고의 문화재가 우리나라 문화재보다 더 대단한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갈돌과 갈판, 빗살무늬토기, 예전에 용산 국립박물관에서 본 같은 문화재들도 많았고, 왕과 왕비의 의상, 장식품등의 화려함과 정교함이 대단했다. 우리나라보다 훌륭한 문화재가 많은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지만 이상하게도 책에 관한 문화재가 없어서 우리나라가 한 수 위에 있는 것 같았다.
박물관을 보고 백화점에 가서 기념품을 샀다. 엄마가 친지들, 지인들에게 줄 양털로 만든 몽고 신발을 많이 샀다. 꼭 신발 장수 같았다.
쇼핑이 끝나고 징기스칸 공항으로 가서 인천으로 오는 비행기를 탔다. 8박 9일 동안 힘들었지만 정말 소중한 경험을 했다.
비행기에서 몽고의 초원이 사라지는데 아쉬웠다. 다음에 몽고에 오게 된다면 난 테레지에서 말 타기를 완전히 익힐 것이다.
그리고 의료봉사 경험은 나에게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해 주었다.


인도주의 실천, 나눔의 행복

인도주의 실천, 나눔의 행복


콤스타는 의료환경이 열악한 ODA 대상국 주민들을 위해 해외의료봉사단을 파견하고 있으며, 현지에서 진행되는 학술교류 세미나를 통해 우리나라 고유의 한의학을 알리고 교육하는데 힘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