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 114차 우즈베키스탄 한방의료봉사 - 동신대학교 한의학과 김혜화
안녕하세요. 저는 동신대학교 한의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김혜화입니다. 2008년 한의학에 대해 막연한 이미지만을 가진 채 입학했던 저는 어느 새 9번째의 방학을 맞이했습니다. 다른 방학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계획 없이 평범하게 보내다가, 이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교적 자유로운 학생 시절 때 의미가 있으면서도 색다른 경험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114차 우즈베키스탄 한방의료봉사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와 우즈베키스탄과의 시차는 4시간입니다. 시차에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인천공항에서 타슈켄트공항까지의 7시간의 이동 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서 잠을 전혀 자지 않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출국 시간은 오후 5시 반이었지만 10분 정도 늦어져 이륙했고 앞으로 겪을 일에 대한 기대감과 흥분, 제대로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주변도 어두워진지 한참 지나서야 1차 목적지인 타슈켄트공항에 현지시간으로 밤 9시에 도착하였습니다.
다음 날부터 공식적인 의료봉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처음 의료봉사 장소에 도착했을 때 기다리고 있던 많은 수의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일손이 부족했던 관계로 자침 담당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침을 놓아야 한다는 것도 부담되었지만 더 큰 문제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현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러시아어를 쓰고 있었고, 침을 놓기 위해 자세를 취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정말 어려웠습니다. 바디랭귀지와 발릿(아프다)이라는 단어를 계속 사용해가며 매우 단편적인 의사소통을 하면서 침을 놓고, 뜸을 뜨는 가운데 시간은 매우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몇 가지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의료 봉사의 첫 번째 날, 약국에서 복약지도를 담당하던 코이카 단원 분이 한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하다가 난감한 얼굴로 다가왔습니다. 환자분이 금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약을 먹을 수 없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의료봉사가 이루어지던 기간은 라마단 기간으로, 본래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은 라마단에 해가 지기 전에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다행히 라마단은 환자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금식을 면제시켜주기 때문에 환자분인 만큼 약을 드실 동안만 식사를 제대로 해 주시고, 나중에 보충하시면 안 되겠냐고 설득하여 약을 받아가시도록 하였습니다. 그 할아버지와 같이 온 것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저와 복약지도를 하던 코이카 단원의 등을 두드려 주시고 할아버지와 함께 나가셨습니다. 다른 분들도 가슴에 손을 얹으면서 스파시바(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해 주셨고 영어로 “Thank you”, 서투른 우리나라 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서 먹으라고 쥐어주신 분도 계셨습니다.
이런 사람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환자가 있습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어머니와 함께 찾아왔던 소녀가 있었습니다. 4일 동안의 일정 중에서 2일을 방문했었고 두 번 다 제가 어머니와 그 소녀에게 침을 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침을 맞는 것을 멀찍이서 지켜보고 제가 침을 놓는 것을 두려워하던 소녀는 다음에는 먼저 찾아와서 침을 맞았습니다. 그 소녀와 어머니에게 침을 놓고, 밥을 먹을 시간이 되어 그냥 나가려다가 아쉬운 마음에 시계를 먼저 가리키고 밥을 먹는 시늉을 한 다음에 손을 흔들어 주고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생각하지도 못하게 건물 입구 근처의 그늘에 앉아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를 보자 손을 흔들면서 이름과 이메일 주소를 적어달라며 종이와 볼펜을 내밀었습니다. 그 때가 돼서야 알았지만 소녀는 영어를 배워서 영어 회화가 가능했습니다. 제 이름과 나이, 이메일 주소를 알려준 다음 저도 가지고 있던 수첩에 이름과 나이를 적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Isayeva Moxinur, 16살이라고 하더군요. 앞으로 잘 지내라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통역 분들이 없을 때면 미묘한 행동과 표정, 어조만으로 우즈베키스탄 환자분들의 의사를 살필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서로의 진심만은 통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로 돌아와서도, 우즈베키스탄 환자분들의 고마워하시는 모습이 기억납니다. 아직도 그 때 일을 생각하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많은 것을 배우고 받았던 4일 간의 의료봉사활동이었습니다.
2012 114차 우즈베키스탄 한방의료봉사 - 동신대학교 한의학과 김혜화
안녕하세요. 저는 동신대학교 한의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김혜화입니다. 2008년 한의학에 대해 막연한 이미지만을 가진 채 입학했던 저는 어느 새 9번째의 방학을 맞이했습니다. 다른 방학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계획 없이 평범하게 보내다가, 이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교적 자유로운 학생 시절 때 의미가 있으면서도 색다른 경험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114차 우즈베키스탄 한방의료봉사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와 우즈베키스탄과의 시차는 4시간입니다. 시차에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인천공항에서 타슈켄트공항까지의 7시간의 이동 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서 잠을 전혀 자지 않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출국 시간은 오후 5시 반이었지만 10분 정도 늦어져 이륙했고 앞으로 겪을 일에 대한 기대감과 흥분, 제대로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주변도 어두워진지 한참 지나서야 1차 목적지인 타슈켄트공항에 현지시간으로 밤 9시에 도착하였습니다.
다음 날부터 공식적인 의료봉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처음 의료봉사 장소에 도착했을 때 기다리고 있던 많은 수의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일손이 부족했던 관계로 자침 담당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침을 놓아야 한다는 것도 부담되었지만 더 큰 문제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현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러시아어를 쓰고 있었고, 침을 놓기 위해 자세를 취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정말 어려웠습니다. 바디랭귀지와 발릿(아프다)이라는 단어를 계속 사용해가며 매우 단편적인 의사소통을 하면서 침을 놓고, 뜸을 뜨는 가운데 시간은 매우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몇 가지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의료 봉사의 첫 번째 날, 약국에서 복약지도를 담당하던 코이카 단원 분이 한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하다가 난감한 얼굴로 다가왔습니다. 환자분이 금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약을 먹을 수 없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의료봉사가 이루어지던 기간은 라마단 기간으로, 본래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은 라마단에 해가 지기 전에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다행히 라마단은 환자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금식을 면제시켜주기 때문에 환자분인 만큼 약을 드실 동안만 식사를 제대로 해 주시고, 나중에 보충하시면 안 되겠냐고 설득하여 약을 받아가시도록 하였습니다. 그 할아버지와 같이 온 것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저와 복약지도를 하던 코이카 단원의 등을 두드려 주시고 할아버지와 함께 나가셨습니다. 다른 분들도 가슴에 손을 얹으면서 스파시바(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해 주셨고 영어로 “Thank you”, 서투른 우리나라 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서 먹으라고 쥐어주신 분도 계셨습니다.
이런 사람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환자가 있습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어머니와 함께 찾아왔던 소녀가 있었습니다. 4일 동안의 일정 중에서 2일을 방문했었고 두 번 다 제가 어머니와 그 소녀에게 침을 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침을 맞는 것을 멀찍이서 지켜보고 제가 침을 놓는 것을 두려워하던 소녀는 다음에는 먼저 찾아와서 침을 맞았습니다. 그 소녀와 어머니에게 침을 놓고, 밥을 먹을 시간이 되어 그냥 나가려다가 아쉬운 마음에 시계를 먼저 가리키고 밥을 먹는 시늉을 한 다음에 손을 흔들어 주고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생각하지도 못하게 건물 입구 근처의 그늘에 앉아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를 보자 손을 흔들면서 이름과 이메일 주소를 적어달라며 종이와 볼펜을 내밀었습니다. 그 때가 돼서야 알았지만 소녀는 영어를 배워서 영어 회화가 가능했습니다. 제 이름과 나이, 이메일 주소를 알려준 다음 저도 가지고 있던 수첩에 이름과 나이를 적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Isayeva Moxinur, 16살이라고 하더군요. 앞으로 잘 지내라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통역 분들이 없을 때면 미묘한 행동과 표정, 어조만으로 우즈베키스탄 환자분들의 의사를 살필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서로의 진심만은 통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로 돌아와서도, 우즈베키스탄 환자분들의 고마워하시는 모습이 기억납니다. 아직도 그 때 일을 생각하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많은 것을 배우고 받았던 4일 간의 의료봉사활동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