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101차 네팔-김규만 단원#3

콤스타
2020-05-20
조회수 461


KOMSTA가 STAR가 된 이야기-3 如是我驗이요 如是我行이라!


소설 드라마 연극 영화를 보면 모두가 극적劇的인 Plot 다음에는 극적劇的인 반전이 일어난다. 그래서 극劇은 극劇으로 통한다고하지 않던가! 이런 것을 궁즉각窮卽覺이라고 한다. 아니 이것을 깍꿍(覺弓)이라고 하지!

 

막막한 고뇌 속을 헤매다 2002년 KOMSTA 10주년 의료봉사 당시 많은 호의를 베풀어 준 코네코 정현일 사장이 기억나 급하게 수소문을 했다. 정사장님의 명을 받들어 킹콩을 닮은 아들 승순군이 우리의 일을 전담해 주겠다고 한다. 승순군은 한국에 나와 있어서 광화문 돈(豚)집에서 만났다. 이제는 넘을 고개는 다 넘었다. 독립선언문에 ‘착수가 곧 성공이다’는 말이 기억났다. 대한항공을 타고 카투만두 공항에 도착하니 정현일사장과 승순이 마중나왔다. 카투만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만두였는데 지금은 더 큰 만두가 돼버려 옆구리가 터질 지경이다.


여전히 계속되는 후진국형 부정 부패 뇌물 탈법 정치가 판을 치면 칠수록 비례해서 종교적 신비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도시에 다시와 보니 ‘신은 도대체 낮은 곳으로 임하지 않는다’는 회의를 하게 된다. 도시는 그대로인데 인구도 차도 2배가 늘었다.

 

시대착오적인 마오쩌뚱(모택동)을 숭배하는 총을 든 마오이스트(Maoist)들이 활거해서 산에서 살던 사람들이 하산해서 카투만두로 모인 것이다. 제한된 인프라인 상수도 하수도 도로 전기 쓰레기 교통문제 등등 카투만두는 수많은 문제를 안고 가슴이 터질 지경이 되었다. 아련한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한가한 추억의 만두가게는 회상하기 어려울 것 같다. 태양은 매일 똑같이 떠오르지만 바람과 구름은 알 수 없는 날씨를 만든다는 생각을 해본다.

 

숙소는 우아한 말리호텔 좌측에 있는 카지노의 부속 건물로 우리는 이 카지노를 지나서 숙소로 들어갈 수 있다. 위로가 된다면 UNICEF본부가 바로 옆에 있다는 거였다. 봉사일정이 너무 많아 오후 시간에 문화탐방을 하기로 했다. 아주 길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 언덕 위 몽키 템플에는 거대한 티베탄 쵸르텐(佛塔)이 ‘진실의 눈’을 뜨고 사방을 바라보고 있다. 처음은 신비요 나중은 일상의 권태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모든 종교는 어느 정도 모순과 불가사의를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장소를 빌려주어 2일간 의료봉사를 하기로 했다. 모든 진료를 총괄하는 이인 진료부장님께서는 특유의 신속하고 강하며 조직적인 리더쉽이 나온다. 101차 komsta 네팔봉사에 참여한 아름다운 사람들은 임일규, 김선하, 이인, 이재홍, 진선두, 김규만, 김태일, 양영혁, 성주원 원장님들과 자원봉사자 김혜경, 전현숙, 서성준님과 콤스타의 홍희경 양으로 총 13명이서 유쾌한 반란을 일으키면 즐겁게 봉사에 임했다. 첫날 오전은 시스템을 깔고 서로 손을 맞추는 시간이므로 좀 더디다. 그러나 오후부터는 속도가 빨라져서 인산인해로 밀려오는 환자들을 체계적으로 잘 진료하고 있다. 다음 날은 시스템이 개선되고 솜씨는 더 익숙해져서 속도는 훨씬 더 빨라진다.

 

오후에는 볼런티어로 온 서성준 단원과 함께 MTB로 다음 봉사지 무글링까지 선발대先發隊로 가기로 했다. 점심시간인데 청탁환자가 많다. 골반은 우리 몸의 물리적 중심으로, 골반이 틀어지면 척추도 틀어지고 하지도 틀어진다. 주로 요추만을 미시적으로 보고 하는 대부분 치료는 공염불같다. 심한 견비통 견갑통 오십견도 골반을 바로하지 않으면 치료가 잘 안 된다. 모든 요통, 골반통, 하지통, 슬관절, 장경인대, 족관절, 족저근막 증후군도 골반을 안 맞추면 절대 치료가 안 된다. 여시아험如是我驗이요, 여시아행如是我行이라(나는 이같이 경험했고, 이같이 실행하고 있다)! ‘차고 치고 맞추는’곳으로 틀어지고 어긋난 사람들이 몰려온다. 이런 ‘인의 장막’을 넘어서 출발하니 1시 30분이 된다.포카라는 서쪽으로 200km이지만 무글링은 그 중간 약 100km지점이라 삼삼하고 넉넉하게 갈 수 있다. 길 위에는 포탄자국(!)처럼 패인 곳이 많다. 점프를 하면서 뛰어 넘어가다보니 도시의 포장 도로에서 Off Road를 달리는 묘미가 느껴진다.

 

풍경은 다시 스산한 가을이다. 그러나 숙살肅殺의 기운보다는 결실結實의 기운이 강해서 우리나라의 모 찬 가을 절제된 우수 비애보다는 풍요로운 서정이 더 많이 느껴진다. 3모작을 하는 들에는 벼들이 익어있다. 3모작은 이 나라의 잠재된 가능성이다. 무글링 의료봉사는 계획에 없었는데 그 지역 어느 독지가가 숙식과 장소를 모두 제공한다고 해서 특별히 야간이동을 하면서 계획을 잡았다. 숙소는 무글링의 리버사이드스프링리조트이다.

 

맑은 공기가 일찍 잠을 깨워서 삼삼오오 강 구경을 하러 갔다. 래프팅으로 유명한 트리슐리강은 변함없이 세차게 흐르고 있다. 이 강물은 인도의 갠지즈Ganges강으로 흘러간다. 리조트의 넓고 넓은 수영장에 고요가 깨진다. 수영모가 불필요한 진선두단원은 홍모紅毛하나 걸치지 않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가죽 수영복만 입고 수영장에 들어가 적나라赤裸裸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잠시후 수영장을 다시 바라보니 머리가 하나더 보인다. 올드보이, 김선하원장님이 물에 들어가 계신다.

 

네팔은 시차가 3시간 15분 늦기 때문에 3시간 15분 이전에 적응된 우리에게 아침은 황금 같은 시간이다. MTB의 장점은 여러 가지지만 기동력이라 아무도 갈 생각조차 못하는 현수교를 넘어 트리슐리 강 건너 문명의 오염이 덜한 마을로 넘어갔다. 오지에 온 전문작가처럼 부지런히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제주도의 정랑은 여기서 너무 많이 볼 수 있다. 염소와 소의 먹이인 풀이나 나무 이파리들을 공중에 매달아서 너무 깨끗하고 경제적이다.

 

아침 식사를 하고 6km를 더 가서 무글링 번화가에서 트리슐리 강 쪽에 진료실을 세팅하고 통역 겸 자원봉사자들과 진료 스타일을 조율해야 한다. 오후 속도가 붙을 때쯤 느긋하게 래프팅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우리도 일찍 진료가 끝나면 즉시 래프팅을 하고 내려가다가 어두워지면 내려서 버스를 타고 포카라로 가기로 했다. 그러나 너무 늦고 위험하며 안하겠다는 사람도 있어 케이블카를 탔다. 이 삭도索道는 매우 높고 길어 고도만 1천m이상 올라간다. 위로 올라가니 금새 추워지고 어둠이 깔린다. 무글링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떠나 포카라에 10시쯤 도착하였다. 서둘러 방 배정을 하고 자리에 누었다.

 

포카라의 아침! 일어나 산책을 가려고 하는데 숙소의 주소도 이름도 모르겠고 물어볼 사람도 없다. 그러나 걱정 뚝! 벽에 걸린 포카라 대형 지도를 보고 동서남북 갈 방향과 장소를 몇 개 메모하고 나서 디지털카메라로 숙소 주위 사진 몇 장 찍어둔다. SUUNTO손목시계에 내장된 나침반을 보고 가야할 방위각을 잡았다. 페와 호수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프랑스 외인부대에 버금가는 영국군 구르카용병의 박물관을 거치게 된다. 이런 식으로 가면 작은 도시 안에 원하는 곳은 다 갈 수 있다. 돌아올 길을 잘 모르겠으면 디지털카메라에 든 사진을 보여주면서 물어보면 즉시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디카만 있다면 파리 런던 동경 암스텔담 베를린 뒷골목 어디라도 좋다. 산악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고요한 아침 네팔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볼 수 있다. 빛이 좋아서 똑딱이 카메라로도 작품사진이 나온다. 아무에게 간섭받지 않고 라이딩을 하면서 고요한 아침 풍경을 프레임에 집어넣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포카라는 1년 내내 따뜻한 곳으로 설산의 만년설을 볼 수 있다.


낮이면 안나푸르나 남봉, 안나푸르나 1봉, 마차푸차레, 안나푸르나3,4봉, 안나푸르나2봉 등 많은 설산들이 따뜻하게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고, 밤이면 ‘포카라의 밤하늘에는 ‘콤스타(★)’라고 하는 별이 와서 성스럽게 떠있었다’고 전한다

인도주의 실천, 나눔의 행복

인도주의 실천, 나눔의 행복


콤스타는 의료환경이 열악한 ODA 대상국 주민들을 위해 해외의료봉사단을 파견하고 있으며, 현지에서 진행되는 학술교류 세미나를 통해 우리나라 고유의 한의학을 알리고 교육하는데 힘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