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109차 동티모르-성윤수 단원

콤스타
2020-05-20
조회수 477


동티모르(Timor-Leste ) 의료봉사에 참여하다.

 

2011년 komsta 국내 의료봉사에 수 차례 참여하고 이 모임에 매력을 느껴 임원까지 맡게된 지 불과 얼마 안 되어 동티모르 의료봉사 참여를 결정하고 준비하게되었습니다. 한의원을 개원한지 1년 도 채 안 되어 1주 이상 자리를 비운다는게 부담으로 다가온 것이 사실이지만, 일단 일을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이라 맘 속에는 어떠한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사실 komsta와의 첫 만남은 오래 전에 있었습니다. 90년 대 중반 제가 러시아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당시 komsta가 러시아 해외의료봉사를 진행할 때 통역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 때 한국인으로서 고맙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한 느낌을 갖게 해주었던 komsta였습니다. 지금은 벌써 수 많은 국내 의료봉사와 109회 째 해외의료봉사를 진행하는 내년이면 20년, 사람으로 치면 성인이 되어가는 NGO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10년이 훌쩍 넘어 한의사가 되어 다시 만났을 때 '진작 올껄...'이런 생각도 들었고, 참으로 반갑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대 가득한 출국일을 2일 앞두고 컨디션 조절 실패로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오한발열에 하리청곡...가서 누워있다 오겠군...

 

다행히 하루 전에는 오한발열이 사라졌고, 하리 증상은 남은 채 아침에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뜻밖에 함께 출국하는 선한의원 원장님이 준 상비약 한 알을 먹고 하리가 멎었습니다. '역시 오길 잘했구나. 한약은 훌륭하구나.' 그렇게 맘 속으로 웃었습니다.

 

인천에서 인도네시아 덴파사(Denpasar) 까지 비행기로7시간 - 동티모르 수도 딜리( Dili )까지 비행기로 2시간 - 또 목적지 오에쿠시(Oecusse)까지 UN 헬리콥터로 2시간. 긴 여정 끝에 도착한 그 지역은 인도네시아 국경에 둘러싸여 고립된 지역이었습니다. 포르투갈 정복자들이 그 땅에 처음 발디딘 곳이기도 합니다. 육로로 가자면 다시 인도네시아 비자를 받아 국경을 넘고 또 한 번 국경을 넘어야 갈 수 있는 그 곳은 전기를 하루 중 정해진 시간에만 사용할 수 있으며 며칠에 하루씩은 그나마 없는 오지였습니다. 그 곳에서 3박4일을 머물며 의료봉사를 진행하면서 처음엔 찌는 더위와 익숙치 않은 현지식사 때문에 힘들었지만 이내 단원들 모두 잘 적응 했고 마지막엔 음식을 즐기는 수준까지 되어 돌아왔습니다.

 

짧은 기간의 의료봉사였지만 엑기스제제와 침치료 만으로도 환자들의 증상이 호전되는 모습에 한의학의 위력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 수백명의 환자들을 제한된 종류의 약품과 짧은 시간에 진료하며 아쉬움도 많았습니다. 환자 중엔 부실한 영양섭취 때문인지 더운 나라인데도 의외로 감기환자가 많았습니다. 그 외 피부병 등 현지인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질병들이 몇 몇 있었고 저녁마다 이에 대한 짧은 토의가 진행되었습니다. 현지인의 체질과 기후를 고려해 약처방을 구성하면 이후 동티모르 의료봉사에 유용히 사용될거라 생각되어 다음 회차에는 약품구성을 조정해보기로 했습니다.

 

귀국해 돌아와 진료실에 앉아 있으니 불과 며칠 전 동티모르에서의 일들이 아주 오랜 기억처럼 희미하게 느껴집니다. 역시 좀 짧았던 감이 있습니다. 중고등학생 청소년시절 러시아에서 주말마다 교회친구들과 겁없이 수년 간 결핵병원과 정신병원을 다니며 환자들을 상대로 봉사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땐 의료인도 아니었고 의료인이 되겠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또한 치료에 직접적 도움을 주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 느낀 보람과 기쁨은 정말 컸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잊었던 그 기억을 되살려준 계기가 된 의료봉사였습니다. 다음 해외의료봉사가 벌써 기대됩니다. 더 많은 한의사 동료분들이 이 일에 동참하면 좋겠습니다.

인도주의 실천, 나눔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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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스타는 의료환경이 열악한 ODA 대상국 주민들을 위해 해외의료봉사단을 파견하고 있으며, 현지에서 진행되는 학술교류 세미나를 통해 우리나라 고유의 한의학을 알리고 교육하는데 힘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