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65차 동티모르 의료봉사-최병규 단원

KOMSTA
202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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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차 동티모르 해외봉사 일지

올해 초 KOMSTA에서 2005년 봉사활동 대상국이 확정되어 그 중에서
막연히 동티모르란 국가에 관심이 가게 되어 KOMSTA에 참가 신청을 했다.

동티모르는 면적이 우리나라 강원도크기(1만 4604㎢)만하고,인구는77만 8000명(2003)이다. 동티모르는 16세기에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서티모르는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되어 네덜란드령 동인도로 알려졌다. 서티모르는 1950년대 인도네시아가 독립하면서 그 영토의 일부가 되었지만, 동티모르는 1975년까지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다. 인도네시아 인구의 90%가 회교도이지만 동티모르인은 포르투갈의 영향으로 가톨릭교도가 압도적이다.

동티모르는 1975년 포르투갈 군대가 철수하자 인도네시아에 병합되었다. 주민들은 곧 독립운동을 시작하였으나, 지난 25년간 인도네시아 군대의 무자비한 탄압을 받았다. 인도네시아에 병합된 뒤 20만 이상의 동티모르인이 기아, 질병, 전투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권 유린에 대한 보도가 잇따르자 전세계의 관심이 동티모르에 쏟아졌다. 그리고 1996년에는 동티모르를 위해 활동하던 카를로스 필리페 시메네스 벨로 주교와 호세 라모스오르타가 동티모르의 상황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반군 지도자 호세 알레산드레 구스마우가 인도네시아 감옥에서 석방되었다.

1999년 오랜 독재정치 끝에 물러난 수하르토에 뒤이어 대통령이 된 B.J.하비비에는 동티모르 독립문제를 주민투표에 부칠 용의가 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자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지지하는 게릴라와 인도네시아 군대의 철수를 반대하는 민병대 사이에 유혈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소요를 이유로 두 차례나 연기된 끝에 동티모르의 독립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주민투표가 국제연합(UN) 감시하에 1999년 8월 20일 실시되었다. 동티모르인은 압도적으로 독립을 지지했으며 그 결과가 발표되자 동티모르는 무정부상태에 빠졌다. 주민투표 후 인도네시아를 지지하는 민병대가 주민들을 납치하거나 살해하기 시작하여 주민들은 피난을 떠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UN 보고에 의하면 전체 주민의 1/3이 피난에 나섰다고 한다. 구조활동자, UN기관 종사자, 외교관 등도 민병대의 표적이 되었고, 오스트레일리아 영사관, UN기관 사무실, 심지어 인도네시아 주재 오스트레일리아 대사까지도 민병대의 공격을 받았다.

하비비에 대통령은 동티모르에 질서를 회복하겠다고 거듭 다짐하고 계엄까지 선포했지만 인도네시아 군대를 동원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1999년 9월 12일 UN 평화유지군이 동티모르에 파견되는 것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UN군은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군대로 구성되었으며, 1999년 9월 20일 선발대가 현지에 도착하였다. 한국도 평화유지군을 파견했지만, 민병대나 인도네시아군으로부터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았다. 이어 인도네시아군의 단계적 철수가 시작되었으며, 1999년 10월 20일 25년간에 걸친 인도네시아 지배로부터 벗어났다. 2002년 4월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구스마오가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됨에 따라 21세기 첫 독립국가가 되었다.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6월 4일 토요일
드디어 동티모르 봉사날이 다가왔다.
10시 비행기로 울산을 출발하여 12시 인천공항 3층 셔블 한식당에서 봉사단원을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정지현과장으로부터 간단한 일정과 현지사정에 대하여 설명을 들었다.
오후3시발 인도네시아 쟈카르타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긴 여정의 장도에 올랐다. 7시간의 비행끝에 쟈카르타에 도착하여 현지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KOMSTA멤버인 김승호단원을 만나 환담을 나누고 출.입국 수속을 원만히 하게 많은 도움을 주셨다.
동티모르 딜리로 가는 비행기는 발리공항에서 매일1차례 있단다. 발리로 가서 잠깐 눈을 부쳤다.(새벽1시경)

6월 5일 일요일
말로만 듣던 발리섬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고 9시경 발리 공항을 출발해 12시에 동티모르 딜리 공항에 도착했다.
만 하루를 비행기에 시달리니 벌써 몸이 지쳤다.
활주로만 있는 황량한 딜리공항 우리나라의 어는 면소재지 시외버스 정류장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남국의 이국적인 정취와 때뭍지 않은 순수함이 우리를 반기는 듯 하다.
도착하니 대사관직원(박행정관님. 배총각선생님 .현지인 김성호)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아 차에 두고 우리 대사관으로 향했다.
대사관에서 대사님께서 먼 곳까지 이렇게 찾아줘서 고맙다고 치하 하시고 동티모르 역사와 우리나라와의 관계 등을 세세하고 인자하게 들려주셨다.
대사님과 면담 후 내일 진료할 대성당으로 가서 진료소를 설치하고 숙소로 가서 짐을 풀고 곧장 딜리 주변 해안가로 가서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간단하게 한잔하며 내일을 다짐했다.

6월 6일 월요일
진료 첫째 날, 약제실설치 진료실배치 및 플래카드걸기 등 첫날 아침 일이 많기때문에 8시경에 진료소로 나오니까 첫날부터 환자들이 많이 모여 들었다. 성당에서 홍보가 많이 되었나 보다. 서둘러 진료소를 정비하고 통역도우미를 소개 받고 나서 진선두 단장님과 정홍수 진료부장님으로부터 간단한 진료수칙을 전달받고 KOMSTA윤리강령을 시작으로 진료에 임했다. 밀려드는 환자를 정신없이 보는 중에 오늘은 동티모르의 히딩크로 알려진 김감독님이 축구하다 발목이 삔 유소년 선수를 데리고 침을 맞으러 왔다. 유소년선수랑 잠깐 한카트 찰칵.
저녁에 숙소 식당에서 KOMSTA주최로 대사님과 직원.김감독을 모시고 저녁만찬을 하였다. 그리고나서 대사님께서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영화 보여주기 프로그램(문화시설이라곤 전혀없고 영양이 부실한 지역 어린이들을 위해 빵.사탕.음료를 나눠주고 태권도 홍보프로로 대한민국을 알리고 톰과제리 만화영화상영)에 참석하였음.

6월 7일 화요일
진료 이틀째, 어제와 마찬가지로 많은 환자들이 몰려 들었다.
대부분이 근골격계 동통성 질환(요통,견비통…)이지만 피부병 환자들이 많은 것 같다.제대로 소독하지 않은 체 방치하여 2차.3차 감염되어 피부가 엉망이다. 여기 현지인들은 경제 여건상 하루 1~2끼로 해결 한단다. 그래서그런지 영양상태가 부실하고 침을 놓고 2~3분만 유침해도 침훈을 일으키는 환자가 많았다.
저녁에 딜리시에서 4~50분 거리에 있는 UN beach에 가서 단원들의 친목 도모와 동티모르에서의 추억 만들기를 했다. 수영도하고 산호도 줍고 해삼도 줍고 백사장에 KOMSTA글씨를 크게 써서 사진도 찍고 술과 노래를 곁들이고 즐겁고 유익한 하루를 보냈다.

6월 8일 수요일
진료3일째, 오늘은 숙소 근처에 있는 또 다른 성당으로 옮겨 진료를 했다.
저녁에 숙소에서 격팔상생역침정혈침법에 대해서 김병수원장님으로부터 보수교육을 받았다. KOMA통신에서 들어본 침법이었으나 이름이 생소해 이런것도 있나하고 그냥 넘어갔다. 오늘 김원장님으로부터 개론정도의 강의와 임상에서 응용할 수 있는 간단한 몇 가지 임상예와 자침법을 배웠다.(무었인지 잘 모르겠으나 심후한 침법인 것 같다.)

6월 9일 목요일
진료 마지막 날, 오늘은 숙소에서 4~50분 거리에 있는 대통령 사저가 있는 마을로 가서 진료를 했다.해발6~700m 정도되는 산골 마을의 조그만 유치원에서 진료를 했다.대사님께서 영부인이 관심을 많이 보여 그쪽에서의 진료를 하루 할애 했다고 한다.
일찍 서둘러 숙소를 출발해 유치원에 가서 진료소를 설치하는데 영부인이 오셔서 우리 단원들을 환대해 주시고 격려해 주셨다. 그런데 대통령이 출근길에 직접 왕림하셔서 단원들에게 일일이 악수하고 포옹하면서 감사하다며 격려를 해주셨다.
오늘은 산골 마을로 와서인지 환자수는 전일에 비해 한산한 편이었으나 꼬마 환자들이 많았다. 모든 꼬마들이 한결같이 감기를 방치해 비염.축농증. 중이염등을 앓고 있다. 근본 원인은 영양이 불실해서인 것 같다.또 상처가 곪아 터진 것, 피부소양증 등등…한 아기는 말라리아에 걸린 지 1주일 됐다 하는데 힘이 없어 엄마 품에 안겨 허멀건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데 얼마나 가슴 아프던지 속으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진료를 마치고 영부인께서 우리 단원들을 사저로 초대해서 다과잔치를 마련해 주셨다. 그때 대통령께서 퇴근하셔서 함께 다과회를 가지고 기념으로 동티모르국기 뺏지와 지도 뺏지를 받았다.(동티모르는 티모르섬 동쪽과 서티모르의 북부해안에 오쿠시지역이 있는데 지도뺏지에 오쿠시지역이 없으니까 그곳 주민이 대통령께 우리 오쿠시지역은 왜 뺏지에 없는냐고 항의(?)해서 대통령은 오쿠시지역은 내마음 깊숙이에 새겨있다고 했다 한다. 그래서 그곳 주민들은 대통령을 더욱 신뢰하고 따른단다.)
우리는 보답으로 동티모르 오는 첫날 우리대사님께서 영부인이 미망인과 고아들을 위한 자선 단체를 운영한신다는 예기를 듣고 십시일반 성금을 조금모아 KOMSTA이름으로 후원금을 내고, 대통령이 허리가 불편하시다는 정보를 입수한 진단장님이 디스크닥터와 찜질기를 준비하셔서 선물로 전달 했다.
저녁은 대사님께서 대사관으로 단원들을 초청하셔서 성대한 저녁 만찬을 가졌다. 대사님께서 직접 와인 한잔씩을 따라주시고 건배제의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6월 10일 금요일
오늘은 동티모르를 떠나는 날, 그 동안 우리가 봉사를 왔는지 봉사를 받으러 왔는지 모를 정도로 대사님과 직원들이 우리가 오는 그날부터 떠나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펴주어서 무사히 봉사활동을 마치고 떠납니다.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동티모르를 떠나 역으로 발리 자카르타를 거쳐 무사히 12일 일요일 새벽 6시 10분경 우리 일행은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그 동안 함께한 진선두 단장님, 정홍수 진료부장님, 김길섭. 김병수 .김지영,송태원. 오영선.이정화 원장님, 최광호 작가님, 정지현. 박보라님 모두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인도주의 실천, 나눔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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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스타는 의료환경이 열악한 ODA 대상국 주민들을 위해 해외의료봉사단을 파견하고 있으며, 현지에서 진행되는 학술교류 세미나를 통해 우리나라 고유의 한의학을 알리고 교육하는데 힘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