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의 맛을 느끼다
나에게 있어서 봉사는 가장 큰 기다림이었고, 그만큼 기대를 많이 했다. 인천공항에서 4시간을 날아 카트만두공항에 도착했다. 4번의 봉사활동을 격은 뒤 공항에서의 막힘을 예상했지만 생각 외로 엄청 빠르게 공항을 통과해서 이번 봉사는 순탄하겠다, 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날 저녁 OT에서 이제 진짜 시작 한다는 생각과 새로운 여러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이 봉사를 처음 하는 것처럼 설렜다. 시차 적응과 함께 바로 잠들었고, 다음 날 진료소로 출발했다.
버스로의 이동이 엄청 길었는데, 버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풍경에 잠시 감정에 젖어들었다. 밤새 멋진 옷을 갈아입은 듯, 아침의 카트만두는 멋져 있었다. 이런 멋진 풍경들을 뒤로하고 버스는 계속 달렸다. 한참을 달린 후 우리는 군용 트럭을 개조한 버스로 갈아탔는데, 앞으로의 일을 상상도 못한 채 기쁜 마음으로 탑승했다. 하지만 이 군용트럭이 이번 봉사에서 가장 기억에 크게 남을 만큼 힘들었다. 처음의 흔들림이 점차 산을 올라갈수록 심해졌고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좌우앞뒤로 심하게 흔들렸다. 손잡이도 없는 버스에서 멀미를 안 하려고 최대한 노력을 하고 있는 나였다. 열심히 올라가다가 진흙탕에 빠져 한동안 걸어서 올라가고 내려오는 다른 버스를 만나면 가까스로 지나가고, 다시 생각해보면 엄청난 경험이었다, 드디어 기나긴 버스에서 내리고 진료소에 도착했다. 허름한 학교가 눈앞에 떡하고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허름한 학교가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해외의료봉사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예상치 못한 버스 때문에 지친 몸을 풀고 싶은 마음에 그날 저녁 숙소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시도했지만 끝없이 차가운 물만 졸졸 흘러내리고 있었고 한참 후에야 알게 된 사실에 사짝 충격을 받기도 했다. 우리 숙소는 등산객들이 마지막으로 묵는 게스트하우스였고 이것도 그나마 좋은 숙소라는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빨리 샤워를 했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니 피곤한 몸은 금세 잠들어 있었다.
드디어 대망의 봉사활동 시작이다. 역시 예상대로 우리들 보다 일찍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모두 힘든 몸을 이끌고 멀리서부터 걸어 왔다는 게 느껴졌다. 맛있는 아침밥을 먹고 각자 위치로 가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우리들이 봉사활동을 하는 역할은 크게 4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 첫째, 원장님들이 하시는 진료 둘째, 영어가 되는 대학생들이 하는 통역 셋째, 환자들의 이름과 맥박 등 기초적인 것을 먼저 체크하는 예진 넷째, 예진이 끝난 환자들을 각 원장님들 방으로 인솔하는 안내가 있다. 나는 네 번째인 안내를 동생과 함께 맡았는데, 더운 날씨와 가끔씩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많은 사람들을 뚫고 환자를 데리고 방마다 데려다 주는 것이 간단해 보이지만 엄청나게도 힘들었다. 환자분들이 너무 많으셔서 통솔이 안되자 현지 경찰 분들까지 나섰는데도 질서가 잡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첫날이라 그런지 다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환자를 진료했고 많은 환자들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돌아갔다. 그만큼 우리들은 지쳤고, 그래도 모두 힘내서 파이팅하며 다음날을 맞이했다.
둘째 날과 셋째 날, 그리고 넷째 날 일정은 변동 없이 진료소로 이동하고 아침을 먹은 뒤 진료를 마침으로써 하루가 끝이 나는데, 매일 매일이 우리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고 우리들을 성장시켜주었다. 전날 저녁에 비가내리면 어김없이 길이 무너져 있었고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걸어가야 했다. 땅이 발목까지 잠기고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진흙이 밟혔다. 자신의 몸도 힘겹게 가누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웃음을 잃지 않고 서로를 챙기며 진료소로 이동했다. 정말 군용 트럭이 그리울 정도로 힘이 들었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진료소에 도착했다. 모두 진이 다 빠진 상태였고 물을 찾기 바빴다. 하지만 어김없이 환자분들은 있었다. 우리들은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서 씻고 얼만 안 되는 거리조차 힘들어 하며 진료소로 걸어 왔지만, 환자 분들은 힘겨운 몸을 이끌고 꼭두새벽에 그 먼 길을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걸어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환자분들의 병을 다 완벽하게 치료해 드리지도 못하는 우리들을 환자분들은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우리가 힘들어 하는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는 일상생활이었고 전혀 불평불만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번호표를 손에 꼭 쥐고 줄을 서 계시는 환자분들을 보며, 힘들더라고 힘든 티 내지 말고 열심히 봉사하자 라는 마음을 다시금 잡았다. 첫날에 보였던 우리들의 더딤, 우왕좌왕, 등들은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졌고, 보다 효율적인 봉사활동이 계속 되었다. 서로 각 역할에서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냈고 정말 모두 열심히 했다. 하지만 역시 시간은 우리에게 충분을 허락하지 않았다. 매일매일 모든 한의사 분들이 최선을 다해서 환자분들을 치료했지만, 여전히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분들은 있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내일 다시 오세요, 라는 말을 전하고 돌려보내야했다. 그런 환자분들 중에 다음날 다시 오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너무 멀어서 다시 못 오시는 분들도 있었다. 다시 오시는 분들은 기쁜 마음으로 치료해드리지만 다시 못 오시는 분들은 정말 마음이 아팠다. 이렇듯 기쁨과 슬픔을 모두 겪으면서 마침내 봉사는 끝을 향했다.
봉사는 다 끝이 나고 우리는 카트만투에서 포카라로 이동했다. 드디어 문화탐방 시작이다. 무더운 날씨에 단비를 내려주듯 우리는 래프팅을 하러 갔다. 거칠고 빠른 물살에서 모두 하나 둘을 외치며 노를 젓을 땐 정말 소름 돋을 정도로 잘 맞았다. 물살을 해치고 배가 쭉쭉 앞으로 나가는데 정말 최고였다. 물이 차가워도 뛰어들어 수영하고 모두 어린아이처럼 신났었다. 또 David Water Fall이라는 곳을 갔는데 처음 보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폭포가 떨어져서 마을 밑으로 지나가는 것이다. 그 물결이 지하로 갔다가 마을을 지나 다시 지상으로 올라온다는데 눈으로 보고도 너무 신기해서 사진을 엄청 찍었다. 여러 다른 문화 탐방을 하고 저녁엔 포카라 상그리라라는 호텔을 갈수 있었다. 힘든 몸을 이끌고 방에 들어서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고급 욕실, 넓은 침대, 정말 봉사 할 때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호화스러웠다. 따뜻한 물로 몸을 씻을 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다. 몸과 마음 다 충전하고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보다 힘든 봉사를 내가 또 갈까? 간다면 그곳은 과연 어디일까? 이런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이번 봉사는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했다. 그래서 더 성장했다. 이것만으로도 이번 봉사는 참 잘 갔다고 생각한다.
봉사의 맛을 느끼다
나에게 있어서 봉사는 가장 큰 기다림이었고, 그만큼 기대를 많이 했다. 인천공항에서 4시간을 날아 카트만두공항에 도착했다. 4번의 봉사활동을 격은 뒤 공항에서의 막힘을 예상했지만 생각 외로 엄청 빠르게 공항을 통과해서 이번 봉사는 순탄하겠다, 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날 저녁 OT에서 이제 진짜 시작 한다는 생각과 새로운 여러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이 봉사를 처음 하는 것처럼 설렜다. 시차 적응과 함께 바로 잠들었고, 다음 날 진료소로 출발했다.
버스로의 이동이 엄청 길었는데, 버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풍경에 잠시 감정에 젖어들었다. 밤새 멋진 옷을 갈아입은 듯, 아침의 카트만두는 멋져 있었다. 이런 멋진 풍경들을 뒤로하고 버스는 계속 달렸다. 한참을 달린 후 우리는 군용 트럭을 개조한 버스로 갈아탔는데, 앞으로의 일을 상상도 못한 채 기쁜 마음으로 탑승했다. 하지만 이 군용트럭이 이번 봉사에서 가장 기억에 크게 남을 만큼 힘들었다. 처음의 흔들림이 점차 산을 올라갈수록 심해졌고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좌우앞뒤로 심하게 흔들렸다. 손잡이도 없는 버스에서 멀미를 안 하려고 최대한 노력을 하고 있는 나였다. 열심히 올라가다가 진흙탕에 빠져 한동안 걸어서 올라가고 내려오는 다른 버스를 만나면 가까스로 지나가고, 다시 생각해보면 엄청난 경험이었다, 드디어 기나긴 버스에서 내리고 진료소에 도착했다. 허름한 학교가 눈앞에 떡하고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허름한 학교가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해외의료봉사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예상치 못한 버스 때문에 지친 몸을 풀고 싶은 마음에 그날 저녁 숙소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시도했지만 끝없이 차가운 물만 졸졸 흘러내리고 있었고 한참 후에야 알게 된 사실에 사짝 충격을 받기도 했다. 우리 숙소는 등산객들이 마지막으로 묵는 게스트하우스였고 이것도 그나마 좋은 숙소라는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빨리 샤워를 했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니 피곤한 몸은 금세 잠들어 있었다.
드디어 대망의 봉사활동 시작이다. 역시 예상대로 우리들 보다 일찍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모두 힘든 몸을 이끌고 멀리서부터 걸어 왔다는 게 느껴졌다. 맛있는 아침밥을 먹고 각자 위치로 가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우리들이 봉사활동을 하는 역할은 크게 4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 첫째, 원장님들이 하시는 진료 둘째, 영어가 되는 대학생들이 하는 통역 셋째, 환자들의 이름과 맥박 등 기초적인 것을 먼저 체크하는 예진 넷째, 예진이 끝난 환자들을 각 원장님들 방으로 인솔하는 안내가 있다. 나는 네 번째인 안내를 동생과 함께 맡았는데, 더운 날씨와 가끔씩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많은 사람들을 뚫고 환자를 데리고 방마다 데려다 주는 것이 간단해 보이지만 엄청나게도 힘들었다. 환자분들이 너무 많으셔서 통솔이 안되자 현지 경찰 분들까지 나섰는데도 질서가 잡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첫날이라 그런지 다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환자를 진료했고 많은 환자들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돌아갔다. 그만큼 우리들은 지쳤고, 그래도 모두 힘내서 파이팅하며 다음날을 맞이했다.
둘째 날과 셋째 날, 그리고 넷째 날 일정은 변동 없이 진료소로 이동하고 아침을 먹은 뒤 진료를 마침으로써 하루가 끝이 나는데, 매일 매일이 우리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고 우리들을 성장시켜주었다. 전날 저녁에 비가내리면 어김없이 길이 무너져 있었고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걸어가야 했다. 땅이 발목까지 잠기고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진흙이 밟혔다. 자신의 몸도 힘겹게 가누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웃음을 잃지 않고 서로를 챙기며 진료소로 이동했다. 정말 군용 트럭이 그리울 정도로 힘이 들었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진료소에 도착했다. 모두 진이 다 빠진 상태였고 물을 찾기 바빴다. 하지만 어김없이 환자분들은 있었다. 우리들은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서 씻고 얼만 안 되는 거리조차 힘들어 하며 진료소로 걸어 왔지만, 환자 분들은 힘겨운 몸을 이끌고 꼭두새벽에 그 먼 길을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걸어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환자분들의 병을 다 완벽하게 치료해 드리지도 못하는 우리들을 환자분들은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우리가 힘들어 하는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는 일상생활이었고 전혀 불평불만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번호표를 손에 꼭 쥐고 줄을 서 계시는 환자분들을 보며, 힘들더라고 힘든 티 내지 말고 열심히 봉사하자 라는 마음을 다시금 잡았다. 첫날에 보였던 우리들의 더딤, 우왕좌왕, 등들은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졌고, 보다 효율적인 봉사활동이 계속 되었다. 서로 각 역할에서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냈고 정말 모두 열심히 했다. 하지만 역시 시간은 우리에게 충분을 허락하지 않았다. 매일매일 모든 한의사 분들이 최선을 다해서 환자분들을 치료했지만, 여전히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분들은 있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내일 다시 오세요, 라는 말을 전하고 돌려보내야했다. 그런 환자분들 중에 다음날 다시 오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너무 멀어서 다시 못 오시는 분들도 있었다. 다시 오시는 분들은 기쁜 마음으로 치료해드리지만 다시 못 오시는 분들은 정말 마음이 아팠다. 이렇듯 기쁨과 슬픔을 모두 겪으면서 마침내 봉사는 끝을 향했다.
봉사는 다 끝이 나고 우리는 카트만투에서 포카라로 이동했다. 드디어 문화탐방 시작이다. 무더운 날씨에 단비를 내려주듯 우리는 래프팅을 하러 갔다. 거칠고 빠른 물살에서 모두 하나 둘을 외치며 노를 젓을 땐 정말 소름 돋을 정도로 잘 맞았다. 물살을 해치고 배가 쭉쭉 앞으로 나가는데 정말 최고였다. 물이 차가워도 뛰어들어 수영하고 모두 어린아이처럼 신났었다. 또 David Water Fall이라는 곳을 갔는데 처음 보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폭포가 떨어져서 마을 밑으로 지나가는 것이다. 그 물결이 지하로 갔다가 마을을 지나 다시 지상으로 올라온다는데 눈으로 보고도 너무 신기해서 사진을 엄청 찍었다. 여러 다른 문화 탐방을 하고 저녁엔 포카라 상그리라라는 호텔을 갈수 있었다. 힘든 몸을 이끌고 방에 들어서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고급 욕실, 넓은 침대, 정말 봉사 할 때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호화스러웠다. 따뜻한 물로 몸을 씻을 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다. 몸과 마음 다 충전하고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보다 힘든 봉사를 내가 또 갈까? 간다면 그곳은 과연 어디일까? 이런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이번 봉사는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했다. 그래서 더 성장했다. 이것만으로도 이번 봉사는 참 잘 갔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