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차 우즈베키스탄 의료봉사 후기
재작년 라오스 봉사 이후 그때의 추억들과 뿌듯한 감정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 올해 우즈베키스탄 봉사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봉사의 비중이 적었지만 이번 봉사도 봉사 나름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부푼 마음을 안고 출발한 우즈베키스탄 봉사 첫날은 세종한글학교 방문과 진료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어린아이들과는 달리 그곳에는 대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연수원의 역할을 하는 이 곳은 케이팝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 그리고 한글과 우리문화가 스며들어 있는 곳 이었습니다 액자에 걸려있는 아이돌 사진 프린트 되어있는 노래들이 곳곳에 보이고 태극기 또한 보였습니다 탁구장도 있는것을 보며 외국의 학생들이 우리문화를 편하게 잘 배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곳곳을 소개받은 후 진료 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진료 준비를 마친 후 설레이는 마음으로 첫 환자를 맞았습니다 안내를 하고 진료를 하고 약을 처방하는 우리 봉사단과 저에게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약처방 정도였으나 약을 처방하며 환자와 대화를 할 때에 신기함과 새로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말을 너무도 잘하는 그곳의 학생들을 보며 평소 영어회화를 쉽게 할 수 없는 제가 떠올랐습니다 외국인을 만날 기회가 자주 없었지만 과연 제가 외국인을 만났을때에 선뜻 용기있게 말을 걸 수 있을까요 그들의 유창함과 용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날의 일정을 마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다음날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날의 일정은 아리랑 요양원 방문과 진료였습니다 도착 후 먼저 요양원을 둘러보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후에 진료준비를 하였고 저는 원장님과 함께 회진을 돌며 진료를 기다리시는 분들과 말동무를 해드리고 점심식사 후에는 요양원에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재미있는 게임을 하였습니다 앞서 빼먹은 추가 설명을 드리자면 아리랑 요양원에 계시는 분들은 고려인이십니다 처음뵈는 분들과 함께 공기놀이 윷놀이 젠가를 하며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때 한국에 계시는 저희 외할머니가 생각이 났습니다
어릴적부터 밥해주시고 돌봐주신 저희 할머니는 초등학생때 이후로 집이 멀어지면서 자주 뵐 기회가 없어졌습니다 할머니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으나 자주 만나지 못해 관계가 서먹해지고 친근하게 말동무를 해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처음뵈는 분들과도 이리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데 저희 할머니께는 정작 아무것도 해드린게 없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연세도 좀 있으시고 허리도 아프신 우리 할머니 생각에 걱정이 되어 봉사가 끝난 후 봉사를 하며 느낀점 그리고 사랑한다고 문자를 보내드렸습니다 한국가서는 잘해드려야지 후회없이 잘해드려야지 주신 사랑 다 갚진 못하더라도 할머니가 사랑해주신 만큼 나도 사랑드려야지 생각했습니다 저희 할머니께 감사했고 반나절만에 떠나게 되어 못뵈는 아리랑 요양원의 할머니 할아버지께 죄송스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봉사의 일정을 마친 후에는 관광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최고기온과 맞먹는 평균기온에 따갑고 눈부신 햇빛이 관광을 하는 우리 봉사단의 체력을 거덜나게 하였습니다 약간은 빡빡하다 싶은 관광일정과 이러한 조건으로 거의 모든 봉사단원들이 한번씩은 몸살을 앓았습니다
저 또한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아마 제가 시작이었지 싶습니다 반나절 동안에는 계속 허리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속도 안좋았습니다 오전일정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한 일행들이 돌아왔습니다 원장님 네 분이서 제게 맞는 치료법을 고민하시어 저를 치료하셨습니다 두 시간 내내 쉬지않고 침을 맞은 듯 싶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그때 당시 아팠던 때를 생각하면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지만 훨씬 나아진 몸상태에 원장님들께 감사했고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저녁식사때에는 움직일 수 있어 동행하였는데 국이나 차 이외엔 먹지 말라는 원장님들의 말씀에 서러워서 눈물이 다 났습니다 하루종일 쫄쫄 굶었는데 국물과 차 빼곤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니 그래서 밖으로 나와 서러움을 삭히고 있을때에 언니 오빠들이 잘 달래주어 나았습니다 제가 딱했는지 토마토나 야채 정도는 허락을 해주셨습니다 토마토도 다 먹고 국도 다 먹은 상태였지만 아직도 너무 허기가 졌고 저는 다시 풀이 죽었습니다 원장님 한분의 고기 꼭꼭씹어 먹어라 는 말씀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눈앞의 맛있는 음식을 구경만 하는 꼴에서 벗어나다니 너무 기뻤습니다 고기를 먹으니 힘이 더 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이후로도 다 나은것은 아닌지라 일어나서 설사 식사하고 설사 관광하는 중에 화장실을 가 설사를 하는 등 몸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제 체력은 바닥나 있었고 회복되기에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렇게 기력도 약해지고 음식도 많이 먹질 못해 저는 살이 빠졌습니다 돌아와서 거울을 보는데 온몸의 빼기 힘든 살들이 빠져있었습니다 떠나기 전에 사이즈를 잘못 골라 챙기지 못했던 바지가 너무나도 잘 맞는 것입니다 그때의 고생은 뒤로하고 은근히 기뻐했습니다 고생뒤엔 낙이온다 이럴때 써도 되는 말인지요
음식도 안맞고 체력도 바닥나 힘들었지만 가벼운 몸과 뿌듯함에 가득찬 마음으로 돌아오니 기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수고하신 모든 분들과 함께 그 후 토요일에 다시모여 저녁식사를 하고 소감을 발표하니 소감을 들으며 다시금 봉사때의 감정을 일깨우기도 하고 제가 소감을 발표하며 제작년까지만 해도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도 잘 못하던 내가 성장했구나 하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많은 것을 얻은 8박 9일이었고 내년에도 그 후에도 계속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를 걱정하시고 챙겨주신 부모님과 언니 오빠 동생들 그리고 열심히 치료를 해주신 원장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다시 뵐 것을 기원하며 이만 소감문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134차 우즈베키스탄 의료봉사 후기
재작년 라오스 봉사 이후 그때의 추억들과 뿌듯한 감정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 올해 우즈베키스탄 봉사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봉사의 비중이 적었지만 이번 봉사도 봉사 나름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부푼 마음을 안고 출발한 우즈베키스탄 봉사 첫날은 세종한글학교 방문과 진료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어린아이들과는 달리 그곳에는 대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연수원의 역할을 하는 이 곳은 케이팝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 그리고 한글과 우리문화가 스며들어 있는 곳 이었습니다 액자에 걸려있는 아이돌 사진 프린트 되어있는 노래들이 곳곳에 보이고 태극기 또한 보였습니다 탁구장도 있는것을 보며 외국의 학생들이 우리문화를 편하게 잘 배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곳곳을 소개받은 후 진료 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진료 준비를 마친 후 설레이는 마음으로 첫 환자를 맞았습니다 안내를 하고 진료를 하고 약을 처방하는 우리 봉사단과 저에게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약처방 정도였으나 약을 처방하며 환자와 대화를 할 때에 신기함과 새로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말을 너무도 잘하는 그곳의 학생들을 보며 평소 영어회화를 쉽게 할 수 없는 제가 떠올랐습니다 외국인을 만날 기회가 자주 없었지만 과연 제가 외국인을 만났을때에 선뜻 용기있게 말을 걸 수 있을까요 그들의 유창함과 용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날의 일정을 마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다음날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날의 일정은 아리랑 요양원 방문과 진료였습니다 도착 후 먼저 요양원을 둘러보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후에 진료준비를 하였고 저는 원장님과 함께 회진을 돌며 진료를 기다리시는 분들과 말동무를 해드리고 점심식사 후에는 요양원에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재미있는 게임을 하였습니다 앞서 빼먹은 추가 설명을 드리자면 아리랑 요양원에 계시는 분들은 고려인이십니다 처음뵈는 분들과 함께 공기놀이 윷놀이 젠가를 하며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때 한국에 계시는 저희 외할머니가 생각이 났습니다
어릴적부터 밥해주시고 돌봐주신 저희 할머니는 초등학생때 이후로 집이 멀어지면서 자주 뵐 기회가 없어졌습니다 할머니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으나 자주 만나지 못해 관계가 서먹해지고 친근하게 말동무를 해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처음뵈는 분들과도 이리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데 저희 할머니께는 정작 아무것도 해드린게 없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연세도 좀 있으시고 허리도 아프신 우리 할머니 생각에 걱정이 되어 봉사가 끝난 후 봉사를 하며 느낀점 그리고 사랑한다고 문자를 보내드렸습니다 한국가서는 잘해드려야지 후회없이 잘해드려야지 주신 사랑 다 갚진 못하더라도 할머니가 사랑해주신 만큼 나도 사랑드려야지 생각했습니다 저희 할머니께 감사했고 반나절만에 떠나게 되어 못뵈는 아리랑 요양원의 할머니 할아버지께 죄송스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봉사의 일정을 마친 후에는 관광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최고기온과 맞먹는 평균기온에 따갑고 눈부신 햇빛이 관광을 하는 우리 봉사단의 체력을 거덜나게 하였습니다 약간은 빡빡하다 싶은 관광일정과 이러한 조건으로 거의 모든 봉사단원들이 한번씩은 몸살을 앓았습니다
저 또한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아마 제가 시작이었지 싶습니다 반나절 동안에는 계속 허리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속도 안좋았습니다 오전일정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한 일행들이 돌아왔습니다 원장님 네 분이서 제게 맞는 치료법을 고민하시어 저를 치료하셨습니다 두 시간 내내 쉬지않고 침을 맞은 듯 싶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그때 당시 아팠던 때를 생각하면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지만 훨씬 나아진 몸상태에 원장님들께 감사했고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저녁식사때에는 움직일 수 있어 동행하였는데 국이나 차 이외엔 먹지 말라는 원장님들의 말씀에 서러워서 눈물이 다 났습니다 하루종일 쫄쫄 굶었는데 국물과 차 빼곤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니 그래서 밖으로 나와 서러움을 삭히고 있을때에 언니 오빠들이 잘 달래주어 나았습니다 제가 딱했는지 토마토나 야채 정도는 허락을 해주셨습니다 토마토도 다 먹고 국도 다 먹은 상태였지만 아직도 너무 허기가 졌고 저는 다시 풀이 죽었습니다 원장님 한분의 고기 꼭꼭씹어 먹어라 는 말씀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눈앞의 맛있는 음식을 구경만 하는 꼴에서 벗어나다니 너무 기뻤습니다 고기를 먹으니 힘이 더 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이후로도 다 나은것은 아닌지라 일어나서 설사 식사하고 설사 관광하는 중에 화장실을 가 설사를 하는 등 몸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제 체력은 바닥나 있었고 회복되기에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렇게 기력도 약해지고 음식도 많이 먹질 못해 저는 살이 빠졌습니다 돌아와서 거울을 보는데 온몸의 빼기 힘든 살들이 빠져있었습니다 떠나기 전에 사이즈를 잘못 골라 챙기지 못했던 바지가 너무나도 잘 맞는 것입니다 그때의 고생은 뒤로하고 은근히 기뻐했습니다 고생뒤엔 낙이온다 이럴때 써도 되는 말인지요
음식도 안맞고 체력도 바닥나 힘들었지만 가벼운 몸과 뿌듯함에 가득찬 마음으로 돌아오니 기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수고하신 모든 분들과 함께 그 후 토요일에 다시모여 저녁식사를 하고 소감을 발표하니 소감을 들으며 다시금 봉사때의 감정을 일깨우기도 하고 제가 소감을 발표하며 제작년까지만 해도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도 잘 못하던 내가 성장했구나 하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많은 것을 얻은 8박 9일이었고 내년에도 그 후에도 계속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를 걱정하시고 챙겨주신 부모님과 언니 오빠 동생들 그리고 열심히 치료를 해주신 원장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다시 뵐 것을 기원하며 이만 소감문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