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113차 스리랑카-박태열 단원

KOMSTA
202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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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차 스리랑카 한방의료봉사 보고서 (쿰북게테진료실을 중심으로) 


<프롤로그>

 

삶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추구에 있다는 말이 있다경험자의 말을 빌자면 봉사활동만큼이나 강한 감동으로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도 드물다가기 전에는 망설임과 설렘이 있고 가서는 겸허함과 희열이 있고 다녀와서는 아쉬움과 감사함이 있다바로 그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이 중독성 강한 봉사활동을 끊지 못하는 것 같다.

울산시 한의사회 회원을 주축으로 구성된 이번 KOMSTA <113차 스리랑카 한방의료봉사>는 36명의 KOMSTA단원이 스리랑카 SKAMST 단원 10명과 함께 7/24~8/1에 스리랑카의 두 시골마을 리디가마와 쿰북게테에서 3,800여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한국의 문화를 소개했다스리랑카 전통의학자들과 세미나를 개최하고 상호 교류의 시간을 가졌으며 학교환경을 개선하고 기생충예방 등 보건사업도 함께 펼쳤다가난하고 고통 받는 주민들을 진료하고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동시에 양국 전통의학의 교류 및 발전과 우호증진에도 기여했다.

내게 <113차 스리랑카 한방의료봉사>는 여느 봉사와 다른 의미가 있다의료봉사를 떠난다는 것을 알게 된 지인 몇 분이 이번 봉사에 써달라며 내게 성금을 맡겼다그들의 소망을 함께 담아야 했기 때문에 특별히 세밀했고 더 진지했다.

사실 줄곧 견지해 온 <보탬이 될 삶>의 실현이 내게는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다그것을 실현하려는 마음을 품을 즈음이면 건강 때문에 그 꿈을 접었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13차 스리랑카 한방의료봉사>는 내가 오랫동안 품어온 그 꿈을 실현하기위한 첫 발걸음이다진료를 하는 동안 그들이 건넨 감사의 손짓과 작별이 아쉬워 흘리던 눈물은 가슴 뭉클한 희열이었다무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뎅기열주의 지역이었던 스리랑카에서 우리의 꿈과 소망을 여럿이 함께 나눈 그 일은 더 깊은 의미가 있다가슴 속에 있는 어떤 간절한 소망보다도 한 번 내디딘 작은 그 발걸음이 더 큰 여운으로 남는다이번봉사에는 사랑하는 딸 재영이도 함께해서 참 든든했다.

 

1. 일정 및 추진배경 등

<113차 스리랑카 한방의료봉사>는 2012.7.24. ~ 8.1.에 보건복지부의 후원으로 KOMSTA가 총괄하여 한의사 및 자원봉사자 36명과 이를 취재한 울산MBC 방송국 PD1명으로 구성된 봉사단이 <스리랑카침구의료봉사단(SKAMST)> 10 명과 함께 스리랑카 중북부지역인 리디가마와 쿰북게테 두 지역에서 펼친 한방의료봉사 활동이다.

스리랑카는 오랫동안 포르투갈네덜란드 영국 등 유럽강국의 식민통치를 받아오다가 1948년 2월 독립하였으나 다수인 싱할라족과 힌두계인 타밀족 사이의 내전이 지속되어오다가 최근 2009518일 내전이 완전 종식되었다하지만 오랜 내전으로 인해 나라경제는 극도로 나빠져 있고 집을 잃은 난민들과 극빈층은 감염영양실조전염병 등 열악한 보건환경에 그대로 방치되어있는 실정이며 이들에 대한 의료구제가 절실히 필요하다.

스리랑카에는 전통의학인 <아유르베다>가 있다. KOMSTA는 스리랑카에 2,000년부터 지금까지 10차례의 의료봉사팀을 파견해왔으며 그동안 약 2만 여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2005년에는 한규언 박사를 정부파견한의사로 파견하여 KOREAN CLINIC을 운영하면서 지금까지 수많은 환자를 진료하는 한편 한국한의학에 관심이 있는 전통의사를 대상으로 1년 과정의 한의학교육과정을 개설하여 매년 졸업생을 배출하였다그리고 이들을 중심으로 <스리랑카침구의료봉사단(SKAMST)>를 운영하는 등 우리나라 한의학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스리랑카는 의료시설이 낙후되어있고 수도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는 병원이 거의 없거나 그나마도 갈 형편이 안 되는 주민들이 대부분이다그들은 말라리아나 뎅기열 등 각종질병에 노출된 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있다이번 <113차 스리랑카 한방의료봉사>는 스리랑카 정부 공식초청에 의한 봉사활동으로 한국의 한의사와 스리랑카의 SKAMST 단원이 함께 가난하고 고통 받는 현지 주민들을 진료·구제하는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동시에 양국 전통의학의 교류 및 발전을 통하여 양국 간 우호증진을 도모하고 한의학의 세계화에 기여하기 위함이었다나의 이번 참여는 그것이 곧 내가 줄곧 견지해온 <보탬이 될 삶>의 실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2. 봉사단 출발

우리 봉사단은 울산팀 34명과 부산팀 2명이 각자 출발한 다음 싱가폴에서 합류하여 스리랑카로 들어가게 되었다그 항공사는 싱가폴에서 스리랑카로 들어가는 비행기가 한 편 뿐이어서 일찍 인천을 출발하더라도 싱가폴에서 기다려야한다항공권예매상의 문제로 울산팀이 오전 9시에 인천공항에서 미리 출발했다부산에서 출발한 나는 인천공항에서 오후 440분 비행기를 타기위해 11시에 집을 나섰다김포공항을 거쳐 인천공항에 여유 있게 도착할 수 있었다인천에서 정시보다 약 10여분 늦게 출발했다사실 연결편 비행기와 그리 여유 있는 것이 아니었고싱가폴 공항 지리에 밝지 않았기 때문에 출발지연이 내심 걱정되었다그러나 최소 연결시간을 확보한 탓에 그리 무리한 것은 아니었다싱가폴에는 약 6시간여의 비행 끝에 정시에 도착했다.

싱가폴공항에서 울산팀과 합류했다우리가 탄 비행기는 콜롬보공항에 현지시각 밤12시경에 도착했다콜롬보공항에는 한규언 KOREAN CLINIC 원장님이 나와서 우리를 맞아주었다통상 의료봉사물품이 통관하는 데는 서너 시간 이상이 걸리지만 스리랑카정부의 사전배려로 통관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콜롬보공항은 콜롬보시내에서 약1시간의 거리에 위치해있다숙소인 소버린호텔(The Sovereign H.)에 도착해서 방에 들어서니 새벽2시였다현지시간은 한국시간과 3시간 반의 시차가 있다무려 18시간 반 만에 숙소에 도착한 긴 여정이었다퀘퀘한 곰팡내가 나는 장급수준의 방이었지만 여독에 지친 우리는 곧 잠이 들었다.

 

 

3. 봉사활동

 

1) 봉사활동 제1

(1) 진료소 설치

아침6시에 기상하여 식사를 마친 다음 8시에 진료소인 리디가마와 쿰북게테로 향했다단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기 때문에 몹시 피로한 상태였지만 우리를 태운 버스는 리디가마로 향했다그곳으로 가는 길에 전통의학병원 안에 위치한 KOREAN CLINIC을 방문하여 시설을 둘러보았다환자용 침대와 적외선이외는 특별한 물리치료기구나 검사장비는 보이지 않았다한국에 비하면 결코 좋은 환경은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한 원장님은 한국과 한국한의학을 스리랑카에 알리는 큰일을 하고 계셨다간단한 기념촬영을 마치고 우리는 곧 이동진료소로 향했다.

우리는 리디가마와 쿰북게테 두 지역에서 진료소를 개설하고 진료하기로 되어있다. 1차 숙소인 소버린 호텔에서는 리디가마가 가까웠기 때문에 쿰북게테보다 리디가마에 먼저 진료소를 개설하기로 했다진료소가 개설될 리디가마까지는 약 80Km정도의 거리지만 약4시간이 소요될 예정이었다도로사정이 열악한 때문이었다포장이 된 2차선도로였지만 도로가 몹시 구불구불했고 오토바이나 소형 삼륜차가 끼어드는 바람에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리디가마로 가는 차 안에서 옆자리에 앉아있던 단원은 자기가 해외의료봉사를 다니면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그의 해외의료봉사 경력은 무려 10회가 넘는 베테랑이었다목욕한지 3년 된 환자 이야기맨발로 다니는 환자들 이야기봉사지에서 에이즈환자를 치료하다가 환자를 찌른 주사바늘에 자신의 손가락이 찔려 하늘이 노래지던 이야기 등등 무용담을 들려주었다.

해외 의료봉사 선배들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가 리디가마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가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우리가 진료를 하기로 되어있던 마을회관은 2층 건물이었는데 에어컨은 설치되어있지 않았다. 30도를 넘는 무더위 속에서 점심을 먹었다그곳사람들은 수저 없이 손으로 밥을 먹는다손을 씻기 위해 수돗물을 최대로 틀었는데도 물줄기가 매우 약하게 졸졸 흐르고 있었다그곳 상수도 상황이 매우 열악했다그런데 누군가가 바가지로 물을 부어주어 손을 씻고 밥을 먹을 수 있었다나는 그곳의 음식문화를 처음 체험했다.

점심을 먹은 다음 진료소를 설치하기 전에 지역 국회의원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을 했다촬영이 끝난 다음에야 우리는 지역 국회의원의 주선으로 좀 더 넓고 좋은 시설이 갖춰진 지역국립병원을 빌려 진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리디가마팀에게 진료물품 등을 전달하고 쿰북게테팀은 그곳을 출발했다이제 우리는 두 팀으로 나뉘어 당분간은 서로 다른 곳에서 각자 진료를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속한 쿰북게테팀은 다시 30여분을 더 달려서 <쿰북게테진료소>를 설치할 카사갈라사(Kasagala Temple)에 도착했다그 절은 1,5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찰이었다절 입구에 진료소를 설치할 스리랑카 전통식 낡은 건물이 있었다그런데 그곳에는 환기장치는 물론이거니와 전기시설이 충분치 않아서 가설한 전선에 전구를 매달았다약 120여 평의 공간에 전구 6개를 군데군데 매달아 실내를 겨우 밝혔다그나마 한낮에는 단전이 되었는데 진료를 위해 비상발전기를 가동했다창에 가까운 곳은 자연채광이라도 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어두침침하여 진료에 매우 부적합했다환자를 진료할 침대는 긴 널빤지로 만든 나무의자 3개를 붙여놓고 그 위에 담요를 깔아서 만들었다침대는 적은 힘을 가해도 쓰러질 듯 흔들거렸다단원들은 진료부장의 지시 하에 신속하게 환자의 동선을 고려하여 진료실을 설치한 다음 개소식을 가졌다.

 

(2) 개소식 및 첫 진료

개소식에 앞서 스리랑카 전통 춤을 곁들인 간단한 입촌 행사를 한 다음 개소식이 진행되었다개소식에는 살린더 디 사나야케 스리랑카 전통의학부장관 , KOICA스리랑카지역부소장한규언 박사위말르 라뜨느 카사갈라사 주지, KOMSTA 단원그 외 지역유지 및 주민 등이 참석했다개소식이 끝난 후 곧바로 진료에 들어갔다.

첫날이었는데도 제법 많은 환자들이 줄을 지어 순서를 기다렸다콤스타 선서를 마치고 진료실을 열자말자 내게 다녀간 첫 환자는 신장병 소녀였다겁먹은 얼굴로 내 앞에 앉아있던 그 소녀는 통역이 알려준 그의 증상과 이미 진단받은 병명을 토대로 침을 시술한 후 그 소녀는 얼굴이 밝아져 돌아갔다그 다음환자는 재발된 중풍환자였다그는 40대 후반의 여자였는데 2년 전에 중풍이 발생했다가 금년 4월에 다시 중풍이 재발해서 왼쪽 수족이 완전 마비된 환자였다혼자서는 걸을 수도 없었고 팔을 들거나 굽힐 수 없었으며 손목과 손가락이 오그라진 채 굳어있었다처음에 그의 손목과 손가락을 펴려고 힘을 주자 비명을 질렀고 손가락은 거의 펴지지 않았다당연히 그런 상태로는 손가락으로 셈을 하기란 불가능한 상태였다마르고 왜소한 그녀의 깡마른 팔뚝에서 중풍 이외에도 심각한 영양실조가 느껴졌다침을 시술한 다음에 그에게 집에서 운동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날 밤 숙소로 돌아온 후에도 그 중풍환자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한국을 출발할 때 나를 성원해준 분들의 당부가 떠오르기도 했다그러나 개인행동을 금하는 단원규칙을 따라야 하므로 순진한 측은지심의 발로에서 내가 직접 금품을 지원하는 등의 개인행동은 허락되지 않았다그것은 진료실을 찾아오는 다른 환자나 다른 한의사들이 관련되어있기 때문이다안타깝지만 내가할 수 있는 것은 좀 더 따뜻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그를 치료하는 것이었다.

무릎이 아파서 온 70대 할머니 환자가 있었다그 할머니는 그곳에서 진료인력들의 식사 및 간식거리를 제공하는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진료를 하는 동안 내내 그곳에서 우리를 돕고 있었다그는 퇴행성 관절염환자였다그런데 침 시술을 받은 후로 무릎이 아프지 않게 되었다그 다음부터 그는 우리를 만날 때마다 엄지손가락을 세워보이며 웃곤 했다진료 중에 갈증 나면 마시라고 홍차나 코코넛도 가져다주고출출할 무렵에는 떡처럼 생긴 그 나라 전통음식도 날라다 주었는데 그럴 때마다 무릎을 낫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하나뿐인 충치 먹은 위 앞니를 드러내며 웃던 그의 환한 모습이 지금도 잊어지지 않는다.

 

2) 봉사활동 제2

숙소인 Hotel Yapahuwa Paradise는 리조트형 호텔로 비교적 아늑하고 평화로운 곳이었는데 수영장과 정원이 잘 가꿔져 있었으며 코코넛 숲과 여러 나무들이 어우러진 산책코스도 있었다.

숙소에서 <쿰북게테진료실까지는 버스로 약 30분이 걸렸다아침식사를 마치고 8시에 숙소를 출발하여 늦어도 9시 이전에 진료를 시작했다두 번째 진료일은 진료실을 열자마자 구름같이 많은 환자들이 몰려들었다점심을 먹을 시간도 없었다허리나 어깨가 아프거나 무릎이 아픈 환자가 주류를 이뤘고 천식두통위장병환자들도 많은 편이었다피부병이나 창상 같은 외상환자들도 종종 있었는데 대체로 환자들은 발톱에 흙이 끼어 있었고 발바닥피부가 두껍고 발에는 상처가 있었다이는 물이 귀한 지역이라 피부위생에 주의하지 않거나 맨발로 다니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추정되었다. <쿰북게테진료소>에 내원한 환자의 연령은 주로 40대 후반에서 70대가 가장 많았고 청소년이나 소아환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어제 왔던 그 중풍환자가 다시 내원했다그의 상태는 놀랍게 호전되어 있었는데 손가락과 손목을 펼 수 있게 되었다너무도 신기해하는 환자의 모습을 보면서 그를 시술한 나 자신도 그의 변화가 믿어지지 않았다엄청나게 많은 환자가 계속 밀려들었지만 그 환자의 진료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우리가 <쿰북게테진료소>를 개설한 카사갈라템플의 주지는 <위말르 라뜨느>라는 승려였다우리가 진료소를 개설하자 그 절의 스님도 진료소를 찾았다통역에 의하면 그는 20년 가까이 오래된 두통과 위염을 앓고 있었는데 침을 놔주고 약을 처방했다. 3일째 되던 날 그가 다시 찾아왔는데 그는 이제 완전히 나았기 때문에 더 이상 치료할 필요가 없다며 동료승려 한 분을 더 데리고 와서는 잘 부탁한다고 했다그 일 이후로 우리 진료팀은 그 지역 주민들로부터 스님의 병을 고쳐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사람들로부터 들었다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그 나라에서는 <스님>은 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추앙과 존중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나서야 그들이 왜 그랬는지 알았다대중버스에도 스님 전용좌석이 마련되어있고 심지어는 진료를 받을 때도 <Lady first!>가 아니라 <Monk first!>라는 사실에서 스님이 얼마나 존대의 대상인지 알 수 있다.


3) 봉사활동 제3

셋째 날이 되자 오전부터 더욱 많은 환자가 몰려들었다어제만 해도 150여명을 접수단계에서 되돌려 보냈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그날은 더 많은 환자가 몰려들었으니 상황이 짐작되고 남음이 있었다우리는 더욱 진료 속도를 높여서 진료했지만 한계가 있었다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잠시도 허리를 펴고 쉰 적이 없었다심지어 화장실도 가지 않았다접수실과 약실에서도 모두 잘해주어서 진료가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어느 여자환자가 왔는데 그는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침을 놓고 부항을 한 다음에 돌려보내려는데 그가 암환자도 보느냐고 물었다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내일 환자와 함께 오라고 말했다그의 질문이 어디 암을 침으로 고칠 수 있다고 믿어서였겠는가열악한 가정형편상 병원에도 갈수 없고 마땅한 치료법도 모르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번 물어나 본 것이었을 것이다그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나는 그의 청을 뿌리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오후에 바로 암환자를 데려왔다암환자는 그의 남편이었다그는 <치은암>이 하악골로 침윤되어 치료가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으나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상태였다깊숙한 곳에서 생기는 극심한 통증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제한 된 진료일정에 비록 완전한 치료는 어렵지만 일단 그의 극심한 통증이라도 완화시켜주고 싶었다침을 시술했다통역이 전해주는 환자의 반응에 따라 시술을 해나갔다몇 개의 침을 꽂고 운침을 하고나자 통증은 현저히 감소되었다다시 몇 개의 침을 더 시술하자 환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나는 그 환자가 겪어야할 고통을 알고 있었다이번 침 시술로 진통효과가 지속할 수는 없다조금이나마 그의 고통을 줄여주고자 자가 치료를 할 수 있도록 간단한 자락법을 가르쳐주었다그러나 안전이 중요하기 때문에 소독법과 시술전후에 해야 할 감염예방사항 등을 함께 알려주었다.

 

4) 봉사활동 제4

첫날 왔던 중풍환자는 마지막 날에도 내원하였는데 더 호전되어 독자적으로 손가락을 굽히고 펼 수가 있게 되었다뿐만 아니라 처음내원당시 침상에서 돌아눕지를 못하던 그가 비록 완전하지는 않아도 스스로 돌아누울 수 있게 되었다내가 그의 상태를 확인한 것은 거기까지였다그리고 그에게 작별을 고했다작별을 고하면서 나는 그를 위해 현지 <아유르베딕 닥터>에게 그동안 시술한 내용과 방법을 직접 보여주었다내가 떠난 이후에는 그 현지의사의 도움을 받으라는 말도 일러두었다.

그는 나와의 이별에 눈물로 인사를 했다그의 두 뺨으로 맑디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순간 우리는 통역이 필요 없었다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내가 그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서로 알 수 있었다나는 그의 손을 한번 힘껏 잡아주고는 펑펑 울고 있는 그를 뒤로 한 채 다음환자가 누워있는 침대로 돌아서야만 했다마지막 날 진료소로 찾아온 환자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하지만 우리는 일정에 따라 많은 사람들을 되돌려 보내야 했다아쉬움이 많이 남았지만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그 때 미처 돌보지 못하고 돌려보내야 했던 그들에게 미안한 맘 금할 수 없다.

 

5) 의료봉사 이외의 봉사활동

의료진들이 열심히 환자들을 진료하는 시간에 비 의료진으로 구성된 봉사단원들은 한국문화 컨텐츠를 전달하고 현지 학교환경 보수 활동을 진행했다한국문화 컨텐츠 전달사업으로는 <투호놀이>, <제기차기>, <한복입고 즉석사진촬영하기>, <풍선아트>, <페이스페인팅>, <종이접기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일부단원은 인근학교화장실의 칙칙하던 벽을 페인트로 밑칠을 하고 그 위에 나비와 꽃을 주제로 한 벽화를 그려 넣어 깔끔하고 멋지게 새 단장을 했다.

 

 

5. 전통의학 세미나

진료실이 개설 된 이후로 매일 하루 종일 정신없이 진료를 했다셋째 날은 진료가 끝난 다음 저녁에 <-스 전통의학세미나>가 열렸다스리랑카에서는 <아유르베다 의학>에 관한 소개를 했고 우리나라에서는 <김성규 박사>가 <사암침법>, <체질침법>, <동씨침법>, <이침등 국내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다양한 침 치료법에 대한 소개를 했다그들의 관심은 한국의 침술에 집중되었고 열의가 대단했다그들과 열띤 질문과 토론이 진행되다가 세미나는 밤10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6. 위험한 열병(熱病)

<-스 전통의학세미나>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나는 잠을 청했지만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는데 겨우 세 시간 정도 눈을 붙인 것 같았다잠을 제대로 못잔 탓인지 몸살기가 느껴졌다잠시 후에는 체온이 오르고 몸살기가 점점 심해지며 식욕이 떨어져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숟가락을 놨다얼른 준비해 간 약을 먹었다약을 먹었지만 이미 올라간 체온은 그리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어제저녁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제대로 먹지 못한데다 지난 3일 동안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하느라 체력이 고갈되었다이로 인해 평소 과로하면 가끔 나타나던 <신우신염>이 재발된 것이다여기서 염증을 잡지 못하면 <급성신부전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이런 경우에는 진료를 쉬고 휴식을 취하면서 약을 복용해야할 것이다하지만 그날 상황은 나 자신을 위해 혼자만 휴식을 취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아무런 내색 없이 마지막 진료를 위해 진료소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진료마지막 날에는 엄청난 환자가 몰려왔다그래서 나는 부득이 나 자신을 위로하며 진료를 할 수밖에 없었다. 38.5도를 오르내리는 열을 내리기 위해 준비해간 약을 계속 복용하면서 몰려드는 환자들을 진료했다하지만 내가 아프다는 사실은 그 때도 다른 동료에게는 말하지 않았다팀 전체의 사기도 생각했고 나 자신의 문제로 팀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마침 다음날은 일요일이었고 환자진료는 그날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참아보려 했다그 열병을 <보탬이 될 삶>의 산통이라 여기며...

 

 

7. 해단식

치열한 전투와도 같았던 4일간의 진료는 오후 4시가 되어 끝이 났다진료를 다 마치고 장갑을 낀 손을 막 씻으려고 하는데 스리랑카 주재 최종문 한국대사께서 예고도 없이 직접 <쿰북게테진료소>로 방문하여 둘러보았다이미 환자진료가 모두 종료된 상태였고 진료소는 철거중이어서 어수선했다예고 없는 방문이라 우리 진료소에서는 대사를 접견할 사람이 없었다대사님께 많은 결례가 되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 되고 말았다.

그가 돌아간 후 얼마 되지 않아 리디가마팀이 진료를 마감하고 쿰북게테팀에 합류하여 해단식이 이어졌다내 몸이 불편하다보니 그것이 그렇게 지루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기념촬영에 이어 알아듣지도 못하는 현지 인사들의 인사말들이 이어졌다어디라도 눕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지루하던 폐회식도 끝나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그날 밤에도 나는 계속해서 약을 먹고 침을 놨다그날 밤에는 푹 잤다그 다음날이 되어서야 겨우 열이 내렸지만 아직 완전한 상태는 아니었다아직 미열이 이어졌지만 견딜 만 했다계속 치료를 해가면서 팀 전체 일정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다.

 

 

8. 코리안크리닉 침구학과정 수료식

우리 팀은 봉사단 해단식이 끝나고 일요일에는 장엄한 페라헤라(Perahera)축제가 있던 캔디에서 하루의 휴식을 가졌다그 다음날에는 스리랑카 아유르베다 전통의학병원에 개설된 <KOREAN CLINIC 침구학 과정 수료식>에 참가해서 27명의 졸업자를 축하하고 격려하기로 되어있었다그 자리에 참석하기 전 우리는 주 스리랑카 최종문대사 주최 오찬에 참석했다콜롬보의 유명 한국음식점 <한국관>에서 베풀어진 오찬은 쌀밥과 해물찌개였는데 오랜만에 맛보는 한국음식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그 자리에서 대사님은 다시 한 번 이번 봉사활동에 대한 격려의 말씀을 주셨다오찬을 마친 우리는 졸업식장으로 향했다그 자리에는 스리랑카 전통의학부 장관주 스리랑카주재 한국대사를 비롯해서 내·외빈들이 참석했다그들은 앞으로 한국한의사에게서 배운 침을 시술하며 환자를 진료하게 될 것이다우리봉사단 단원 전원은 그 자리에서 <살린더 디 사나야케스리랑카전통의학부 장관으로부터 이번 스리랑카 의료봉사활동에 대한 감사장을 수여받았다그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9. 뒷풀이

모든 의료봉사 일정을 다 마친 그날 저녁가벼운 맘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휴식을 취하면서 치료를 했더니 열도 어느 정도 내렸고 몸도 상당히 가벼워졌다그날 저녁식사를 하던 자리에서 곁에 앉아있던 김부환 단장은 수 년 동안 해외봉사를 꾸준히 다니게 된 사연을 내게 들려주었다.

그가 어릴 때 척추질환을 앓고 죽음을 목전에 둘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을 때마침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의사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치료할 수 있었다고 한다새 생명을 얻은 그는 한의사가 되었고 그 외국인 의사에 보은하기위해 지금까지 그는 10여 차례가 넘게 외국에 봉사활동을 꾸준히 다니는 것이었다참으로 아름답게 이어진 사랑의 징검다리였다그의 진지하고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아는 것은 쉬우나 실천하는 것은 더 어려운 법인데 그의 아름다운 삶이 내 가슴을 깊이 흔들어 놓았다.

 

10. 봉사단원 교육

진료이틀째 되던 날이었다우리 진료팀의 통역을 담당하던 단원 중의 한사람이 피부에 물집이 생기는 환자가 있었다처음에는 얼굴에 생긴 물집을 통상적인 여드름인줄 알고 치료하다가 피부를 전공한 내게 의뢰된 것이다그의 피부에는 비교적 전신에 걸쳐 수포가 생겨있었다나는 <임상적 진단>으로 그것을 수두로 즉시 진단했다.

수두는 전염성질환이기 때문에 반드시 격리조치가 취해진 다음 치료하는 것이 필요하다만약 의료시설도 제대로 없는 산간오지에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한방치료를 할 수도 있다그렇더라도 격리조치가 우선이다그 다음 조치로는 봉사단의 명령체계에 따라 전염병 발생사실을 신속히 상부에 보고해야한다그래야 봉사단 차원의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고 예상되는 피해를 줄일 수 있다또 전체 진료 팀의 분위기와 봉사활동 성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가급적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 좋다.

약간의 미흡한 초동조치에도 불구하고 그 환자는 수두로 진단 된 이후로 단장의 결단으로 후송 조치되었다나중에 수두로 확진되어 전문적인 치료를 받고 호전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를 계기로 우리 봉사단은 특히 심폐소생술과 같은 응급환자 처치요령이나 에이즈전염병 등과 같은 특별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모두 진료 때문에 바쁜 분들이라 한자리에 모아서 교육하기가 어렵다면 CD등에 동영상으로 담거나 유인물을 통해서라도 사전교육이 가능할 것이다.

또 우리나라와 전혀 환경이 다른 오지에서 진료하는 만큼 온갖 전염병이나 풍토병 같은 위협으로부터 의료인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 장구(마스크장갑 등)의 착용을 의무화하고 손 소독제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11. 귀국

귀국편 비행기를 타기위해 공항으로 이동했다공항까지 한규언 박사님 부부가 나와서 출국수속을 도와주었다감사의 작별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새벽110분경에 싱가폴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탔다싱가폴에서는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부산팀은 1시간 45분 뒤에 출발하지만 울산팀은 5시간50분을 더 기다려야 한다부산팀은 인천에 오후445분에 도착하지만 울산팀은 밤105분에 도착해서 다시 한밤에 버스편으로 울산으로 내려가야 한다울산팀은 훨씬 더 피곤한 일정이 되고 말았다나는 인천에 도착하여 김포공항을 거쳐 부산으로 왔는데 집에 도착하니 밤 9시 경이었다무려 16시간 20분간의 여정이었다.

나는 이번 봉사일정 중 항공권 예약에 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봉사 일정을 짜다보면 여러 변수가 있고 불가항력인 경우도 생긴다이번에 울산 팀의 일정이 원활하지 못한 것도 현지 사정상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설명이 있긴 했다하지만 좀 더 치밀한 준비가 필요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특히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봉사활동으로 지친 몸으로 인천에서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더욱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전체 일정을 마치고 콜롬보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쇼핑센터에 들렀다스리랑카는 예로부터 홍차가 유명하다홍차에는 문외한이라 어떤 것이 좋은지 잘 모르지만 점원이 좋은 거라는 것을 몇 개 샀다귀국해서 지인들에게 나눠주다 보니 선물이 턱없이 부족했다아쉽지만 미처 선물을 나눠드리지 못한 분들에게는 스리랑카에서 담아온 따듯한 마음의 선물을 나눠드리려고 한다.

 

12. 맺음 글

이번 봉사에서 스리랑카는 지도상으로 먼 나라이지만 따듯한 마음이 서로 통하는 가까운 나라였다무덥고 습도가 높았던 리디가마와 쿰북게테 두 지역에서 우리봉사단원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힘을 합쳐 3,800여명이 넘게 진료하고 인도주의를 실천한 것은 큰 의의가 있다감염영양실조전염병 등 열악한 보건환경에 그대로 방치되어있는 가난하고 고통 받는 주민들을 진료하는 동시에 양국 전통의학의 교류를 통하여 양국 간 우호를 증진하고 한의학의 세계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 드러난 단원의 안전이나 응급환자 및 특별한 상황에 대처할 단원교육 그리고 항공권구매에 관한 문제 등은 향후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개선해야할 점으로 지적하고자 한다.

내게 이번 봉사활동은 의료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갖추어야할 이상(理想)을 새삼 깨닫게 한 시간이었다진료실을 개설하고 마주친 첫 환자는 설렘이었다수많은 환자를 진료하면서 그들의 고통이 사라지던 순간마다 들었던 환호는 전율이었다마지막 진료를 하던 날 그들이 건넨 감사의 손짓과 작별이 아쉬워 흘리던 해맑은 눈물은 가슴 뭉클한 감동이었다스리랑카에서 <보탬이 될 삶>의 산통마냥 앓은 그 열병은 훌륭한 인생퍼즐 한 조각을 새겼다.

같이 참여한 KOMSTA 단원 및 임직원, SKAMST단원통역을 맡아준 KOICA단원 및 성금과 물품을 기부하며 격려하고 성원해준 분들의 건승을 빌어마지 않는다아울러 이번에 마음으로 격려해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스리랑카에서 간호업무를 하며 도와준 딸 재영에게는 <배움을 실천한 즐거움>을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는 말을 남긴다이제 정신을 좀 차리고 그간의 일을 이렇게 정리해 본다.

사랑은 가슴에 담기도 어렵지만 가슴에 담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그러나 그 다음은 전율과 감동으로 벅찬 행복이다.”

인도주의 실천, 나눔의 행복

인도주의 실천, 나눔의 행복


콤스타는 의료환경이 열악한 ODA 대상국 주민들을 위해 해외의료봉사단을 파견하고 있으며, 현지에서 진행되는 학술교류 세미나를 통해 우리나라 고유의 한의학을 알리고 교육하는데 힘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