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2차 해외봉사활동 수기 원광대학교 조현규
벌써 4개월 가까이 흘렀지만,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후덥지근한 온도에 뒤섞인 타슈켄트의 공기가 아직 콧등에 머물러있는 듯합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질 만큼 소중한 타슈켄트에서의 순간들을 꺼내보려 합니다.
먼저 타슈켄트 공항에서 3시간을 기다리던 첫 날의 기억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행정상의 착오인지 저희가 가져온 의료물품이 세관을 통과하지 못 했습니다. 약 5시간 반의 비행을 거친 터라 다들 피곤했음에도 어떻게 되나 함께 걱정했고, 한편으론 서로를 제대로 소개하며 대화를 텄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배가 고파 인천공항에서 산 라면을 맛있게 쪼개 먹은 것도 기억납니다. 끝내 해결되지 않아 빈손으로 호텔로 향할 수밖에 없었지만, 액땜 했다며 늦은 저녁을 먹고 지친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저희 162차 WFK 한의약봉사단은 팀을 나눠 제2국립병원, 고려인문화협회, 아리랑요양원에서 봉사하였는데, 저는 안건상 원장님과 상목이와 함께 아리랑요양원 팀이 되었습니다. 타슈켄트 외곽에 위치한 아리랑 요양원은 고려인 어르신들을 위해 보건복지부와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시설입니다. 둘째 날까지도 의료물품을 받지 못했던 터라, 요양원에 방문해 환자분께 인사드리고 환자와 시설을 파악하며 요양원장님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때 고려인의 역사와 현재, 우즈베키스탄에서의 생활 등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고려인의 아픈 역사를 듣고, 또 한국에서 온 저희를 반가워하시는 모습을 보며 괜히 마음이 쓰여 한국말로 더욱 밝게 인사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셋째날부턴 요양원의 어르신들과 주변의 동네 주민들을 진료해드렸습니다. 한낮은 햇볕과 기온으로 활동이 힘든 중앙아시아 특성 상, 많은 주민 분들이 이른 오전에 몰려 방문하셨습니다. 제가 보기에 저희 팀은 그런 와중에 손발을 맞춰 진료를 꽤나 훌륭히 수행해냈습니다. 먼저, 안건상 원장님께서 우즈베키스탄에 국제협력의사로 지내신 덕에, 러시아어로 큰 어려움 없이 환자분들을 보셨습니다. 많은 환자에도 친절함을 잃지 않고 환자를 보시는 모습은 큰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상목이가 발침 및 진료 보조 업무를 꼼꼼히 잘 수행해내며 궃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안 원장님이 언어에 능하신 덕에, 제가 통역사 비탈리와 함께 예진 및 차트 정리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고려인인 비탈리가 낯선 의료용어도 열심히 뜻을 찾아가며 환자분과의 소통을 도운 덕에 예진에도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환자분의 증상과 기본 정보를 정확히 파악하고, 또 원장님의 진료를 돕고자 노력했습니다만, 다들 워낙 각자의 일을 잘 하셔서 그에 비해 부족하진 않았나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저희 팀은 오후에는 요양원의 병실을 돌며 환자분들을 찾아 뵙고 진료해드렸습니다.
요양원장님 말로는 요양원이 위치한 동네에 하나 있던 보건소마저 없어졌다고 하였습니다. 의사가 부족한 환경에서 정말 다양한 질환으로 환자분들이 방문해주셨습니다. 소화가 잘 안 되는 환자는 기본이고, 눈이 잘 안 보이거나 피부가 가렵다는 환자까지. 또 요양원 환자분들은 상당히 고령이시고 또 호소하시는 증상이 꽤나 심각하고 만성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시간적, 공간적, 물적 제약이 있었는데, 안 원장님의 실력 덕인지, 다행히 많이들 증상이 꽤 좋아졌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제가 치료해드린 건 아니지만, 작게나마 도움이 된 듯 하여 기분이 좋았습니다. 또 환경이 열악하다보니 질환에 대한 관리가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원장님께서 해주신 생활 지도가 특히 의미 있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편으론 진료 마지막 날에 하루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되냐는 환자분들의 말씀에 짧은 기간이 아쉽기도,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하나 놀란 점은 한의약에 대한 우즈베키스탄의 친밀도와 관심이 꽤 높다는 점이었습니다. 고려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종의 환자분들께서 방문하여 침 치료를 받으셨습니다. 또한 요양원의 의사 선생님께서는 진료를 참관하며 안 원장님의 침 치료 과정을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일정 중 마지막에 있었던 “WFK-KOMSTA 한의약 학술 세미나 with 우즈베키스탄”에서도 많은 의료진께서 참석하셔서 한의사 선생님들의 강연을 경청하고 뜨거운 반응을 보이시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한의약이 지속적으로 전파되고 의료진 간 교류가 이뤄진다면, 우즈베키스탄의 의료 환경이 더욱 발전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만난 사람들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운이 좋게도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 유쾌하고 친절하였습니다. 저를 안경잡이라고 놀리던 유쾌한 요양원의 직원 아저씨가 기억에 남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아들과 아내를 데려와 진료를 해드리니 나중에는 집에서 만든 전통 음식 ‘아이란’도 가져다 주셨습니다. 또 매일 얼굴을 비추던 환자분들께서 웃으며 건내던 “스파시바”, “라흐맛”이라는 인사는 타슈켄트에서 들었던 가장 기분 좋은 말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요양원 원장님을 비롯한 직원 분들, 함께 했던 통역사 분들 모두 소중한 인연이 되었습니다.
타슈켄트는 처음엔 날씨, 음식, 언어, 사람 등 모든 게 낯선 곳이었지만 어느새 그리운 곳이 되었습니다. 봉사라는 이름으로 도움을 주러 왔지만 결국 좋은 기억으로 저를 채웠던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에도 이곳에서 봉사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타슈켄트에서의 여정을 함께하며 매일 저녁 이야기를 나누고 또 추억을 쌓은 162차 우즈베키스탄 WFK 한의약봉사단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글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제 162차 해외봉사활동 수기 원광대학교 조현규
벌써 4개월 가까이 흘렀지만,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후덥지근한 온도에 뒤섞인 타슈켄트의 공기가 아직 콧등에 머물러있는 듯합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질 만큼 소중한 타슈켄트에서의 순간들을 꺼내보려 합니다.
먼저 타슈켄트 공항에서 3시간을 기다리던 첫 날의 기억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행정상의 착오인지 저희가 가져온 의료물품이 세관을 통과하지 못 했습니다. 약 5시간 반의 비행을 거친 터라 다들 피곤했음에도 어떻게 되나 함께 걱정했고, 한편으론 서로를 제대로 소개하며 대화를 텄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배가 고파 인천공항에서 산 라면을 맛있게 쪼개 먹은 것도 기억납니다. 끝내 해결되지 않아 빈손으로 호텔로 향할 수밖에 없었지만, 액땜 했다며 늦은 저녁을 먹고 지친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저희 162차 WFK 한의약봉사단은 팀을 나눠 제2국립병원, 고려인문화협회, 아리랑요양원에서 봉사하였는데, 저는 안건상 원장님과 상목이와 함께 아리랑요양원 팀이 되었습니다. 타슈켄트 외곽에 위치한 아리랑 요양원은 고려인 어르신들을 위해 보건복지부와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시설입니다. 둘째 날까지도 의료물품을 받지 못했던 터라, 요양원에 방문해 환자분께 인사드리고 환자와 시설을 파악하며 요양원장님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때 고려인의 역사와 현재, 우즈베키스탄에서의 생활 등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고려인의 아픈 역사를 듣고, 또 한국에서 온 저희를 반가워하시는 모습을 보며 괜히 마음이 쓰여 한국말로 더욱 밝게 인사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셋째날부턴 요양원의 어르신들과 주변의 동네 주민들을 진료해드렸습니다. 한낮은 햇볕과 기온으로 활동이 힘든 중앙아시아 특성 상, 많은 주민 분들이 이른 오전에 몰려 방문하셨습니다. 제가 보기에 저희 팀은 그런 와중에 손발을 맞춰 진료를 꽤나 훌륭히 수행해냈습니다. 먼저, 안건상 원장님께서 우즈베키스탄에 국제협력의사로 지내신 덕에, 러시아어로 큰 어려움 없이 환자분들을 보셨습니다. 많은 환자에도 친절함을 잃지 않고 환자를 보시는 모습은 큰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상목이가 발침 및 진료 보조 업무를 꼼꼼히 잘 수행해내며 궃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안 원장님이 언어에 능하신 덕에, 제가 통역사 비탈리와 함께 예진 및 차트 정리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고려인인 비탈리가 낯선 의료용어도 열심히 뜻을 찾아가며 환자분과의 소통을 도운 덕에 예진에도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환자분의 증상과 기본 정보를 정확히 파악하고, 또 원장님의 진료를 돕고자 노력했습니다만, 다들 워낙 각자의 일을 잘 하셔서 그에 비해 부족하진 않았나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저희 팀은 오후에는 요양원의 병실을 돌며 환자분들을 찾아 뵙고 진료해드렸습니다.
요양원장님 말로는 요양원이 위치한 동네에 하나 있던 보건소마저 없어졌다고 하였습니다. 의사가 부족한 환경에서 정말 다양한 질환으로 환자분들이 방문해주셨습니다. 소화가 잘 안 되는 환자는 기본이고, 눈이 잘 안 보이거나 피부가 가렵다는 환자까지. 또 요양원 환자분들은 상당히 고령이시고 또 호소하시는 증상이 꽤나 심각하고 만성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시간적, 공간적, 물적 제약이 있었는데, 안 원장님의 실력 덕인지, 다행히 많이들 증상이 꽤 좋아졌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제가 치료해드린 건 아니지만, 작게나마 도움이 된 듯 하여 기분이 좋았습니다. 또 환경이 열악하다보니 질환에 대한 관리가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원장님께서 해주신 생활 지도가 특히 의미 있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편으론 진료 마지막 날에 하루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되냐는 환자분들의 말씀에 짧은 기간이 아쉽기도,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하나 놀란 점은 한의약에 대한 우즈베키스탄의 친밀도와 관심이 꽤 높다는 점이었습니다. 고려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종의 환자분들께서 방문하여 침 치료를 받으셨습니다. 또한 요양원의 의사 선생님께서는 진료를 참관하며 안 원장님의 침 치료 과정을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일정 중 마지막에 있었던 “WFK-KOMSTA 한의약 학술 세미나 with 우즈베키스탄”에서도 많은 의료진께서 참석하셔서 한의사 선생님들의 강연을 경청하고 뜨거운 반응을 보이시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한의약이 지속적으로 전파되고 의료진 간 교류가 이뤄진다면, 우즈베키스탄의 의료 환경이 더욱 발전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만난 사람들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운이 좋게도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 유쾌하고 친절하였습니다. 저를 안경잡이라고 놀리던 유쾌한 요양원의 직원 아저씨가 기억에 남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아들과 아내를 데려와 진료를 해드리니 나중에는 집에서 만든 전통 음식 ‘아이란’도 가져다 주셨습니다. 또 매일 얼굴을 비추던 환자분들께서 웃으며 건내던 “스파시바”, “라흐맛”이라는 인사는 타슈켄트에서 들었던 가장 기분 좋은 말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요양원 원장님을 비롯한 직원 분들, 함께 했던 통역사 분들 모두 소중한 인연이 되었습니다.
타슈켄트는 처음엔 날씨, 음식, 언어, 사람 등 모든 게 낯선 곳이었지만 어느새 그리운 곳이 되었습니다. 봉사라는 이름으로 도움을 주러 왔지만 결국 좋은 기억으로 저를 채웠던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에도 이곳에서 봉사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타슈켄트에서의 여정을 함께하며 매일 저녁 이야기를 나누고 또 추억을 쌓은 162차 우즈베키스탄 WFK 한의약봉사단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글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