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161차 우즈베키스탄-김성은 단원 수기문

콤스타
2022-12-12
조회수 449

 제 161차 해외봉사활동 수기 동의대학교 김성은



 20대 초반, 삶이 너무 무기력했다. 다른 이들은 열심히 자기계발과 취업준비로 바쁘게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하고 싶은 것도, 즐거운 일도 없었던 나는 그저 제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죽고 싶지는 않았지만 살고 싶지도 않은 순간들이 있었다. 몸이라도 바삐 움직이면 활력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교육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그 어떤 것보다도 마음의 위안을 많이 받았다. 사람들과 부대껴 얻는 에너지는 대단했다. 이 후 직업 활동을 하면서 소명 의식과 사명감을 더욱 깊게 느끼고자 새로운 진로를 찾은 것이 한의대 입학이다. 한의약봉사단으로서 생애 첫 해외 봉사를 나가게 된 것은 나에게 큰 의미였다.



약 8시간을 비행기로 날아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 도착했다. 8월의 우즈베키스탄의 햇살은 뜨겁다 못해 따가웠다. 묘하게 이국적인 도시의 풍경을 감상하기도 전에 일은 벌어졌다. 위탁수하물로 보낸 의료 용품 박스에 모조리 붉은 테이프가 칭칭 감겨 있었다. 의료 용품을 모조리 놓고 가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세상에, 의료 봉사를 하러 가는데 이런 것까지 신경써야 할 줄 몰랐다. 의료 봉사를 몇 번 다녀오신 선생님들은 세 시간은 거뜬히 기다릴 각오를 하고 계시더라. 공항 한 쪽에 여유롭게 자리를 잡아 앉으시고 화장실도 다녀오셨다. 다행히 오래지않아 의료 용품의 테이프는 벗겨졌다.

 

부산에서 인천, 인천에서 타슈켄트, 그리고 타슈켄트에서 부하라. 1박 2일을 이동해 도착한 부하라는 정말 아름다웠다. 우즈베키스탄에 경주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건물들은 화려하고 다채로운 모자이크와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패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뾰족한 건물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TV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매력적인 도시 경관을 뒤로하고 겨우 사수한 의료 용품을 옮기고 봉사할 장소를 꾸리기 시작했다. 봉사할 준비를 마치고 나니 마음이 벌써부터 벅찼다.




내가 맡은 일은 진료 보조와 사진 촬영이었다. 사실 실수를 많이 했다. 목덜미에 침을 뒤늦게 발견하고 헉 소리를 내서 의도치 않게 진료하시는 선생님을 놀라시게 했고, 환자가 물밀 듯 들어오는 탓에 진료 순서를 헷갈리기도 했다. 한 번은 정신없이 발침하다가 환자 종아리에 침을 하나 덜 뽑았다. 환자가 직접 침을 뽑아 전해주길래 급한대로 한국말로 실수라고 미안하다고 이야기 했더니 알아들었는지 씨익 웃어주었다.


봉사 첫 날에는 환자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첫째 날 봉사가 끝나고 환자 차트를 훑으시던 단장님이 아쉬워하셨다. 그 다음날부터 아쉬울 틈이 없었다. 홍보가 잘 된 모양인지 봉사단이 의료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환자들이 엄청 모여 있었다. 먼저 온 사람들끼리 알아서 번호표를 만들어 나눠가졌다. 그런 와중에도 사람이 너무 많아 환자들끼리 서로 말다툼하는 소리도 들렸다. 어렸을 때 본 드라마 ‘허준’에 나온 배우 임현식이 된 기분을 잠시 느꼈다. “줄을 서시오!” 둘째 날부터 잠시 동안의 여유도 없었다. 우즈베키스탄은 건조해서 땀도 잘 안 날 것 같았는데 웬걸 진료 보시는 선생님과 함께 구슬땀을 뚝뚝 흘렸다. 환자가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다음 환자를 눕혔다. 통역사가 하나하나 통역 할 여유도 없어서 ‘팔과 다리를 걷고 누워계세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등의 문장을 우즈베키스탄어로 공책에 써서 환자에게 보여주었다. 진료 보조도 이렇게 지치고 힘든데 직접 진료를 보시는 선생님은 오죽하셨을까. 선생님 머리칼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다른 진료실을 살필 틈도 없었지만 아마 다 똑같거나 더 바빴을거다. 점심시간이나 되어서야 봉사단은 모여 앉을 수 있었다. 다들 지쳐 보임과 동시에 근심 걱정이 하나도 없는 표정이었다. 다른 진료실 선생님이 봉사를 다녀오면 ‘침빨’이 좋아진다고 하셨다. 다른 것을 모두 차치하고 오롯이 환자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어 그렇다고 하셨다. 한식당 하나 없는 도시에서 통조림 깻잎에 사발면을 먹으면서도 모두 웃음을 잃지 않았다.

 

봉사 일정 막바지에 다다라서야 동선이 익숙해졌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서랍은 저기 놔둘걸, 타이머는 침대 헤드에 끼워둘걸, 환자들은 여기 앉혀두고 대기하게 할걸……. 봉사하는 동안 눈에 익은 환자들도 있었다. 사진을 찍자고 휴대폰을 내미는 내 또래도 있었고 무화과를 잔뜩 가져다주신 아주머니도 있었다. 하나 남은 무화과를 겨우 가져와 한 입 베어 먹으려 하는데 침을 맞고 있던 아주머니가 반으로 쪼갠 뒤 과육을 으깨 먹어야 더 맛있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반으로 쪼갰더니 아주머니가 당신 손바닥을 막 비비셨다. 침대에서 유침 중이었는데도 무화과 한 알에 신경을 써주는 것에 괜스레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에게 있어 봉사의 동기와 원동력은 사람과 맞닿는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봉사활동의 순간에 집중해서 언어도 문화도 다른 사람과 통하는 순간이 해외 봉사 활동에서 가장 가슴 설레는 순간이었다. 그 기분은 비단 나에게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전해지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인도주의 실천, 나눔의 행복

인도주의 실천, 나눔의 행복


KOMSTA는 의료환경이 열악한 ODA 대상국 주민들을 위해 해외의료봉사단을 파견하고 있으며, 

파견국에서 학술교육 세미나, 임상교육 등을 통해 우리나라 고유의 한의학을 알리고 교육하는데 힘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