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141차 네팔-조은우 학생

콤스타
2020-05-20
조회수 1177

봉사활동을 하고나서...울산서여자중학교 조은우

 

먼저 이런 기회를 가지게 도와주시고 곁에 계셔주신 어머니이런 여행을 다녀올 수 있도록지탱해주신 아버지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처음에 어머니께서 네팔의료봉사를 단체로 가는 곳이 있는데 어떠냐고 물어보셨을 때 큰 호감이 가지 않았습니다호감이라기 보단..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죠어렸을 때부터어머니는 저에게 늘 단둘이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 라고 말씀하셨거든요하지만 어머니와 달리 저는 어머니와 같이 여행가는 것을 기대도 안했고 또 상상조차 하지 않았어요해외여행이라면 저야 감사하죠하지만 의료봉사에다가 가는 곳은 후진국인 네팔보나마나 밥은 맛없는 카레에 벌레들이 곳곳에서 습격해오고습기 때문에 줄줄 흘러내리는 땀과 눅눅한 호텔에 더러운 화장실이 우리를 반길 것 같았습니다처음에 당연히 저의 대답은 .....한번 보고...?”였어요더군다나 진짜 한번 생각해 보겠다는 표정이 아니라 영혼 제로의 표정으로 말이예요하지만 어머니말이 자꾸 생각나면서 호기심이 생기는 거예요그래서 어머니께 여쭈어봤더니 우리가 가는 호텔은 최상급 호텔이어서 괜찮다고 고생은 4~5일만 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대답을 듣고 바로 승낙했습니다며칠간 상상을 너무 안 좋은 쪽으로 하던차에어머니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좋게만 느껴졌거든요.

 

드디어 출발 1일 전이예요. 10일치 짐을 싸느라 짐은 많은데기내용 케리어라 짐이 적어야해서 무척이나 고생했죠장도 엄청 보고요원래 당일 전날 밤이 가장 설레잖아요걱정만 되더라고요까다로운 입맛에 내가 거기서 밥은 잘 먹을 수 있을까아직 철없는 중학생이 거기서 잘 적응이나 할까설레었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걱정만 가득 찼어요이런 생각에 땀 뻘뻘 흘리며 짐을 싸니 벌써 밤이 되었더라고요네팔 가기까지 하루도 안 남았다는 생각에 다시 기대감이 밀려왔어요걱정반 기대반으로 눈을 감으니 1초도 안된 것 같은데 어머니께서 깨우셨어요자꾸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며 옷을 갈아입고 짐체크를 하며 우리집을 한번 둘러봤습니다이제 10일은 못 볼 내집그렇게 아쉬운 집과의 작별인사를 하고 가족과 함께 공항에 도착했습니다일행을 만났지만 다들 낯설었어요어렸을 때 본 듯 조금 낯이 익으신 엄마 친구 분 도 계셨지만 막상 아빠와 은채와 헤어지니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게다가 그렇게 기대하던 저와 동갑 학생은 다른 사정으로 못 오고.... 동생들은 초등학생이고... 언니 오빠들은 다들 몇 번 와보신 상태시고 더군다나 제가 반말하고 그럴만한 나이들은 아니셨죠중학생은 딱 나뿐인 이 공간에서 다시 한번 집과 가족친구들의 그리움이 물밀 듯 밀려왔어요사실 고등학생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낯설어 피하고 다닌 적도 있어요.

 

편하고 편한 비행기로 4~5시간 날라가니 네팔이라는 나라에 도착했습니다공항에 딱 들어서자마자 호텔과 게스트 하우스는 안봐도 될 것 같았어요공항인데 에어컨이 없다니.. 또 네팔식 짐검사 장면을 보니 네팔에서 비행기 테러는 우리나라 테러범들에겐 껌일 것 같았어요어머니의 말에 의심이 확 몰려오는 순간이었죠땀 흘리며 짐을 찾고 옮기고 나오니 버스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어요그 버스를 타는 순간 물이 그냥 촤악.... 그렇게 호텔가는 동안에도 저희는 네팔의 가난함을 뼈져리게 느꼈습니다호텔에 들어오고 잠깐의 회의 또는 호텔소개를 듣고 방에 들어갔어요진짜 절망적이였습니다꾀죄죄한 냄새온몸을 수분 축축으로 만들어줄 눅눅한 침대에 방충망도 없고 창문도 없이 커튼만 쳐져있으며더군다나 비까지... 정말 비행기표만 구해준다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정말 싫고 싫은 저녁밥과 물이 세는 버스눅눅한 호텔... 마음에 드는게 없었죠그날 밤에는 각자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어요아직 이름은 다 외우지 못했지만 기필코 다 외우리라 결심했죠그때 말 걸어주시고 인사해주신 언니 오빠들이 한층더 친근히 느껴졌어요.

 

피곤한 밤을 보내고 일어나서 짐을 싸고 버스를 탔습니다달리고 달려서 카트만두에서 다딩까지 왔어요트럭같은 큰 버스로 갈아타니 이때까지는 포장도로였고 이제부터는 비포장도로라고 하시네요이때까지 포장도로였다는것에 1차 충격을 받은 저는 30km가 3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듣고 정신의 이상을 느꼈어요. 30km가 ....3시간이라니요.....정말 이해가 안됐습니다막상 비포장 도로에 들어서니 시간문제를 떠나서 여기서 살아 돌아가면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바로 밑은 절벽에 폭은 정말 좁고 구불구불태반이 급 커브 구간에다 울퉁불퉁산사태라도 일어난건지 버스가 흔들리고 날고 뜨고 말도 아니었죠한번은 진흙탕에 빠져서 현지분들께서 버스를 밀어주신 적도 있어요책에서만 보던 이야기가 바로 눈앞에 일어나고 있었죠저희는 식겁한채 운전사 뒷통수만 믿고 타고 갔어요 완전 운전사분은 베테랑급이셨죠잤다가 깼다가 밀었다가 부딪쳤다가 내렸다가 올랐다가 날았다가를 반복해서 드디어 봉사할 장소에 도착했어요.

봉사할 장소는 학교였어요교복을 이쁘게 차려 입은 제 또래 아이들이 저희를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죠하지만 저희는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겨를이 없었어요그날은 의료봉사를 알리는 행사시간을 가지느라 엄청 바빴기 때문이에요전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네팔어가 마냥 자장가처럼 들렸어요좀 있으니 하얀 천을 목에 감아 주더라구요그걸 걸치고 계속 영혼없이 네팔어를 들으며 앞을 쳐다보고 있으니 연설이 끝났어요너무 좋았는데 이제는 다른 분이 연설을 하시네요계속 들으니 드디어 끝났어요내일부터 같이 일할 팀들 끼리 이야기도 하고 네팔어를 준비하기도 했어요저희 통역사는 여자애였는데 저보다 한 살위인 언니였어요이름은 따라였고요정말 여리고 이쁜 언니 였어요착하기도 했죠그렇게 인사를 끝내니약간의 진료시간을 가졌어요그런김에 어머니랑 화장실에 다녀왔죠처음 본 화장실 외부를 보니 어머니께서 지금 저에게 장난 치시는건가 했어요화장실이 텐트라니요... 슬쩍 내부를 보니 더 충격이였어요널빤지 두 개에다 그사이에 구멍을 파고...... 어쩔 수 없이 들어갔다 나왔어요고난이었죠.

 

그렇게 봉사하는 장소에서의 일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왔어요방 배정을 받으니..저희 방에 화장실이 없네요공동 화장실이 있다는 말을 듣고 가니... 울고 싶었어요생전 처음 보는 화장실이었어요그래도 씻어야 해서 어렵게 샤워와 양치질을 마치고 돌아왔어요어머니의 말씀과는 너무 다른 호텔숙소의 내부에 정말 실망했죠그래도 마음 굳게 먹고하룻밤을 거기서 머물렀어요.

 

봉사장소에 온지 2일째가 됐어요아침밥을 먹고 부쳐온 짐을 나르고 정리하느라 엄청 바빴어요크게 도움이 되지는 못했지만 저도 도왔어요저희 어머니를 포함해서 가운을 차려 입으신 원장님들이 마냥 대단하고 존경스럽게 느껴졌어요오로지 봉사하겠다는 마음만 믿고 여기까지 오신 원장님들과 언니오빠들 동생들이 정말 자랑스러웠죠역할 분담 결과전 약재실을 맡았어요원래는 꼬마들과 놀아주는 분담이라고 들었었는데약재실을 맡게되어 다행이라 생각했고맡은 일 열심히 해보겠다고 다짐했어요.

 

정말 진료가 시작되었어요환자가 한분한분 늘어나더니 어느새 정말 쉬지도 못 할 정도로 바빠졌어요소민이 언니와 소민이 언니의 어머니동기 오빠 어머니통역을 맡은 현지인 2명 이렇게 6명이서 할려니 너무 힘들어서 통역 하시는 분을 몇분 더 데려왔어요차트를 받고 약을 주고 열심히 설명을 하고 다음 손님 차트를 받을려니 또 물어보고 다시 열심히 설명해주니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으며 쌩 가버리고하니 너무 힘들었죠옆팀분들과 언니가 많이 도와주어서 조금 쉴 수 도 있었어요. ‘하루에 식사 후 3번 드세요가 네팔어인 카나버치 띤꼬띤 뻐떡하니를 하루에 200번 이상을 외친 것 같았어요저녁쯤에는 몸이 말이 아니었죠발꿈치는 엄청 아프고 목에서는 갈라지는 소리가 나오고 다리와 팔은 정말 간지럽고 정신이 멀쩡한게 다행일 만큼 힘들고 지친 첫날이었어요.

 

저녁을 먹고 게스트 하우스에 오니 어머니께서 방을 바뀌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처음 배정된 방에 비하면 이 방은 로얄 페밀리 VVIP급 방이였어요화장실이 딸려있고 침대가 하나 더 있고 창문이 있다는 것에 감격했죠어제 못감은 머리를 드디어 감으며 말리려고 나오니 저기 멀리서 경진이 언니께서 제 이름을 부르셨어요내려가니 언니 오빠들이 다 계셨죠중학생을 끼우기엔 조금 불편함이 따라올텐데 이렇게 저를 찾아주셔서 진짜 감사했어요거기에 가니 모두들 다 반겨주셨어요제민이 오빠와 경진이 언니 사이에 끼어 술대신 음료를 홀짝이며 즐겼어요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답니다.

 

세 번째 아침이 또 다가왔어요너무 정신없는 오전이었어요게스트 하우스에서 아침일찍 일어나 우리 팀에게 아침 인사를 건내드리고 나니 버스를 탈 시간이 되었지요덜컹덜컹 흔들리는 버스를 타면서 슬쩍 아래를 보니 절벽이었어요너무 무서워서 버스가 기울어질때마다 꺄악 하고 비명을 질렀는데 그때 제 겁을 덜어주신 연진이 언니와 창문을 보지 말라고 조언을 내주신 현지인 분도 계셨죠너무 고마우셨구요.

 

아침을 먹고 약을 나누어주고 약 정리를 하고 차트 정리를 하니 현지인들이 만들어 주신 간식이 왔어요밀크티와 감자튀김이였는데너무 맛있었답니다점심을 먹고 오후 진료까지 힘들게 하고 나서야 저녁 시간이 되었어요쉴 생각에 들뜨는 마음을 억누르며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죠씻고 나서영국에서 온 언니들과팀 분들언니 오빠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즐겼어요.

 

다음날은 밤새 내린 비로 산사태가 일어나 버스를 조금 타고 가다가 내려야 하는 일이 있었어요그냥 편히 버스타고 올라가고 내려갈때는 진짜 차라리 내 다리 믿고 가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는데막상 어두컴컴한 밤에 후레쉬를 켜고 가려니 무섭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어요그때 강원장님께서 제 손을 잡으시고는 등산할때에 요령을 가르치시며 인도하신적도 있어요덕분에 후레쉬의 도움없이 안전하고 편하게 내려올 수 있었죠그날 밤에는 문신인 헤나를 하며 언니들과 오빠들이랑 추억을 쌓기도 했답니다이쁘고 진한 헤나를 보니 제 마음도 덩달아 편해졌어요또 한편으로는 얼마 남지 않은 봉사활동 일정이 새삼 아쉽게 느껴졌죠.

 

드디어 봉사 마지막 날이에요힘찬 마음으로 찬물에 샤워를 하고 준비를 하고 나왔는데걸어가야 한다고 하시더라구요차타고 1시간쯤의 거리를 저의 두 다리로 가야한다니요갑자기 날아다니던 버스가 그리워졌어요그렇게 땀 뻘뻘 흘리며 올라가서겨우 어제 버스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던 지점에 도착했어요중간에는 가은이와 정민이랑 물을 나누어 마시며 같이 올라가기도 했었죠비옷을 입고 나갔다가 너무 더워서 비옷은 벗고 우산을 썼는데그래도 힘들어서 에라모르겠다 이왕 젖은거’ 라고 생각하며 맨몸으로 웅덩이에 발을 담그며 걸었어요한번은 너무 힘들어서 경진이 언니와 현지인이 태워주신 오토바이에 무섭다고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며 올라가기도 했답니다.

 

그렇게 진료 하기 전부터도 진 다 빼고 도착하니 맛있는 아침이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어요맛있게 먹고 나니 진료 시간이네요어쩌면 다시는 못할 이 해외에서의 진료를 만끽하며 어느 때보다도 더 열심히 하고 밝게 일을 시작했어요그때 특별한 맛있는 치킨을 제공해주신 이춘재 단장님과그 맛있는 치킨을 만들어주신 많은 현지인 분들게 정말 감사했어요저녁땐 온통 고기로 차려진 만찬을 먹으며 네팔의 아리랑인 레썸 삐리리를 듣고 춤추며 마지막의 시간을 즐겼어요그렇게 거기서의 배경과 많은 도와주신 현지분들풍선과 사탕을 가지고 싶어 조르던 아이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차에 탔답니다.

 

봉사활동 장소에서 카트만두 다음으로 큰 도시인 포카라까지는 꽤 걸렸어요버스를 타고 부딪치며 포카라에 있는 상그리라 호텔에 도착했어요호텔에 방을 배정받고 불안한 마음으로 방을 보니 완전 천국이었어요한국 호텔과 비교를 하면 턱 없이 부족한 방이었지만게스트 하우스 보다는 너무나도 좋고 좋은 방이었어요.

 

짐을 간단히 꺼내고거리로 쇼핑을 하러 밖으로 나갔답니다마사지팀과쇼핑팀을 나누어서 거리를 돌아다녔어요생각했던것보다 더 이쁘고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많았답니다달력도 사고히말라야 립밤과 수분크림팔찌드림케쳐폰고리까지 살 수 있었습니다다시 팀원들을 만나고 한식을 차리는 한국사랑이라는 식당에 갔습니다더군다나 한글로 되어있어서 놀랐어요거기에서 비빔밥을 한 그릇 먹고 다시 상그리라 호텔로 갔습니다다들 너무 피곤한 상태였기에 바로 숙소로 돌아가 잤어요호텔에서 더 이상 눅눅하지 않은 이불과 베개를 껴안으며 네팔에서의 얼마 남지 않은 밤을 보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식당을 힘들게 찾아서 가니 카트만두의 상그리라 호텔과 비슷하지만 더욱 더 다양한 뷔페 음식들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거기서 우리 일행분들도 몇몇 만났고요동기오빠와 제민이오빠성진이오빠또 정훈이랑 민혁이는 바로 앞에 수영장에서 놀고 있었어요.

그렇게 재밌는 광경을 보면서 아침식사가 끝났답니다저희가 관광을 하러 간곳은 안나푸르나가 어렴풋이 보이는 어떤 사원이었어요봉사 활동하는 도중에서도 기적처럼 마나술루 봉우리가 살짝 보이기도 했었지요지금 안나푸르나를 혹여나 더 가까이 볼 수 있을것만같은 기대에 힘든 것도 잊고 계단을 올라갔습니다올라가고 또 올라가서 도착한 곳은 어떤 사원이 있는 곳이었어요신발을 벗고시계 방향으로 3번을 돌면 행운이 찾아 온다는 곳이였죠아쉽게도 전 미쳐 알지 못하고 시계 반대방향으로 한바퀴 돌았지만그래도 보기도 쉽지 않은 네팔 사원을 직접 올라가보아서 뿌듯했어요거기서 가족사진도 한 방 찍고요내려오니 기념품을 파는 조그마한 매장이 여럿 있더라구요거기서 가장 눈에 끌리는 뱀 모형 하나를 사고 나니 뭔가 더 뿌듯한 마음이 들었어요.

 

또 정확한 날짜기억이 나지 않지만저희는 화장터에 갔던 적이 있었어요화장을 할 수 있는 자리터가 마련이 되어 있고앞에는 시체의 재를 뿌리는 강이 있었어요그냥 죽어서 불길에 태워져재가 되어 강에 뿌려지는게.... 조금 허탈하고 슬펐어요그 강에서 목욕하며 돈을 줍는 사람들을 몇 봤는데뭔가 마음 한 구석이 아련해졌습니다이후엔 원숭이 사원에 갔었어요입구부터 원숭이들이 몰려오는데 정말 귀여웠죠먹이를 주니 쪼르르 달려와서 다 먹고 쌩 가버리는 뒷 모습이 너무 귀여웠어요계단 위로 올라가서 경치를 구경하는데어떤 사람이 원숭이 먹이를 확 뿌리고 가더니 그때부터 원숭이끼리의 전쟁이 시작됐어요하지만 그 난리통에도 자기 새끼는 확실히 챙겨 안고 다니는 어미 원숭이의 모성애를 보고 조금 놀라웠어요다음엔 폭포를 보러 갔답니다정확한 이름과 장소시간은 기억이 안 나지만폭포가 흘러내리는 장면만큼은 기억 속에 콕 박혀있는 것 같아요엄청나게 깊은 폭포 길과 시원하게도 큰 소리를 내며 내려오는 폭포 또까마득해서 안 보이는 구멍까지너무 시원하고 잊을 수 없는 광경인 것 같아요끝나고 나니 동전을 던져 안쪽에 정확하게 넣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분수대를 봤어요심원장님께서 주워주신 네팔 동전 하나를 꺼내 조심히 던지니 놀랍게도 안에 들어갔어요얼른 장난 반의심 반으로 소원을 빌고 버스를 탔답니다.

 

이렇게 잊을 수 없는 너무나도 소중한 추억이 하나하나 쌓이고저희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그리고 그것이 당일이 되었습니다처음 왔을때는 그렇게 돌아가고 싶고 그리웠던 한국이 이제는 하루라도 더 우리 콤스타 팀원들과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이 들때쯤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게 너무 슬프고 아쉬웠어요비록 호텔 시설과 많은 곤충들의 물림 때문에 짜증이 나고 힘들었지만힘들 때 위로받았던 팀분들과 같이 있으며 느꼈던 기쁨과 행복이 더 컸던 것 같아요정말 지루하고매일 반복되는 저의 일상에서 또계속 학원과 집만 달려야 하는 이 지겹고 더운 여름방학이 올해 네팔의료봉사로 정말 즐겁고 행복했던 10일이 된 것 같아요.

 

진료를 할 때 도와주셨던 많은 팀분들또한 많은 언니 오빠들현지분들 정말 잊지 못할 것 같아요그리고 같이 놀 때 저를 배려해주셨던 언니 오빠들 너무 감사드려요세월이 흘러만약 제가 아이들을 낳고 기른다면 이런 해외봉사는 한 번 쯤은 가게 해주고 싶어요설사저처럼 불평불만하고 영혼 없이 가려고 한다고 해도어느새 이 기회는 일생의 기억에서 가장 콕 박히는사회생활에 나가서 어렸을 적의 해외봉사를 생각하며 피식 웃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하고 값진 것이 될것 같아요지겹도록 봤던 모기들과 정체모를 벌레들울퉁불퉁해서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던 비포장도로게스트 하우스에서 식겁을 했던 도마뱀들이그땐 정말 보고 싶지 않았는데 다시 일상으로 가니까 사소한 것 하나마저도 너무 그립고 아쉬워요.

 

정말 제가 해단식때 했던 그 말처럼시간만 되고 갈 수 있는 형편만 된다면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다시 오고 싶어요정말 저에겐 절대로 평범할 수 없는 가장 특별한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봉사활동 여행이 되었어요!!! 콤스타 콤스타 파이팅!!!!!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다릴게요!!!!! 

인도주의 실천, 나눔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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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STA는 의료환경이 열악한 ODA 대상국 주민들을 위해 해외의료봉사단을 파견하고 있으며, 

파견국에서 학술교육 세미나, 임상교육 등을 통해 우리나라 고유의 한의학을 알리고 교육하는데 힘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