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65차 동티모르-김길섭 단원

콤스타
202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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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차 동티모르 의료봉사

한의사 9명과 행정요원 3명은 인천공항내 식당에서 낮12시에 만나기로 한 시간에 정확히 모여 들었고 처음 보는 한의사가 더러 있어 인사를 나누며 이름을 기억하도록 노력하였다.
동티모르 해외의료봉사모집에 신청을 해놓고 어디에 붙은 나라인가 하고 책상위에 놓인 지구본을 조심스럽게 돌려 보았다. 동티모르가 동남아 신생독립국이라는 것과 독립투쟁 하다가 많은 사람이 학살되었다는 뉴스를 신문으로 통해 여러번 읽어보았지만 그 나라가 정확히 지도의 어느 편에 붙어 있는지는 몰랐다.
지구본을 돌려보고 또 돌려 보아도 동티모르를 찾을 수 없어 땅에 떨어진 바늘 찾기 식으로 필리핀부터 찬찬히 살펴 내려가니 오스트레일리아 바로 위에 동티모르가 보였다.
비행기를 3번 갈아타고 내린 동티모르 수도 딜리의 비행장은 켄테이너 박스 몇개를 설치해두고 검열하는 것이 전부여서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인도네시아 동쪽 끝 순다 열도의 일부인 티모르섬은 16세기 초 포르투갈에 강점된 후 17세기 이래 서티모르는 인도네시아를 통치한 네덜란드, 동티모르는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다.
서티모르는 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인도네시아의 영토로 자동 편입되었고, 동티모르는 1974년 포르투갈이 민주화되면서 식민주의를 포기하자 1975년 독립을 선언하였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방해로 박해를 받다가 2002년에 완전한 독립국가를 이루었다.

땅의 크기는 우리나라 강원도만 하며 인구는 90만명으로 대통령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붙잡혀 인도네시아에 끌려가 7년간 감옥생활을 한 구스마오 독립운동가가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와 테툼어(현지어)를 혼용하며 종족은 말레이족, 파푸안족, 테툼족으로 구성되었고, 종교는 카톨릭이 92%를 차지하였다.

진료 첫째날
딜리 수도의 제일 큰 성당에서 진료하기로 하였는데 성당 바깥마당이 있는 공터에서 진료공간을 만들었으며 여러명이 앉을 수 있는 긴 나무의자들로 칸막이와 동시에 진료받는 의자로 활용하다 보니 아담과 이브가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하여 최소한의 나뭇잎 치마를 걸친 모양새 밖에 되지 않았지만 진료공간만 빌린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했다.
동티모르는 독립한 지가 몇 년 되지 않아 우리에게 제공해 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으며 병원이 있어도 의료기술 수준이 낮았다.
오전부터 침을 맞는 환자들이 더러 훈침이 생겨 갑자기 기운이 없고 정신이 몽롱해진다고 호소한다. 나만 그런가 싶어 옆 칸에서 치료받는 환자들을 살펴보니 비슷한 숫자로 환자들이 이상반응을 일으킨다.
이 나라 사람들은 가난하여 하루에 두번 끼니를 해결하면 양호한 편이며 한 끼 식사만 하는 사람도 많다고 하였다. 몸속에 영양분이 부족하다 보니 침의 자극조차도 이겨내지 못하는 환자들이 속출한 이유가 있었다.
오후에는 햇살이 강렬하게 파고 들어와서 의자 배치를 새로 하였으며 벽면에 걸어둔 해외의료봉사단 홍보용 플랜카드를 걷어서 햇빛차단용으로 사용하였다.
저녁에는 성당마당에서 주민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한국대사관에서 준비한 만화영화 <TOM과 JERRY>를 방영하였으며 대사관님이 아이들에게 직접 우유와 빵을 나눠주는 모습이 보기에 흐뭇하였다.

진료 둘째날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선수단이 치료를 받으러 단체로 몰려 왔다. 축구 연습을 하다가 발목이 다치거나 어깨 결림 또는 종아리 근육통을 호소하였는데 치료는 비교적 간단하게 처치하여도 호전될 질환인데도 이곳에서는 쉽게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시설이 안되어 있는 것 같았다.
이 나라 사람들은 2002년 월드컵 축구 경기 때 한국이 그들을 400년간 지배해 왔던 포르투갈을 축구강국으로 여겨왔는데 한국이 포르투갈을 이겼다는 중계방송을 보고 한국축구를 좋아하기 된 계기였는 데다가 그 후로 한국의 김신환감독이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감독을 맡은 지 1년만에 2004년 세계유소년 축구대회에서 신생국가인 동티모르까지 우승을 하였으니 한국축구는 이 나라 사람들의 우상이 되다시피 하였다.
우승한 유소년들을 살펴보니 하나같이 눈알의 초점 움직임이 또렷하고 신체가 야무지게 보이는 아이들만 선택해서 구성되었다.
한국인 감독에다 팀 닥터로 한의사가 배치된다면 동티모르 축구단의 우승은 세계대회 때마다 따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실내에서 진료할 만한 공간을 허락받지 못해서 실외 공간을 얻어 진료실로 사용하였으며 환자를 바닥에 눕혀서 침을 놓을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되지 못하다 보니 긴 의자에 줄을 세워 앉혀 침을 놓았는데 오늘도 훈침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더러 있었다. 영양결핍뿐만 아니라 뜨거운 날씨에다 불편한 자세로 침을 맞는 환자들에게는 삼중고의 하루였다.

진료 셋째날
다른 지역으로 옮겨 또 다른 성당에서 진료를 하게 되었는데 이 곳에서는 빈 건물을 빌려 주었으며 건물의 겉모습이 닭을 가두어 알을 낳게 하는 양계장을 연상케 되었다. 실내에 들어가 보니 어두침침한데다 전기도 없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는지 쾌쾌한 냄새가 났으며 한 구석에는 정말로 닭똥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래도 첫째날과 둘째날의 진료실보다는 낫다고 생각한 이유는 뜨거운 햇볕을 피할 수 있었고 냄새도 시간이 지나니 코에 동화되어 그런대로 견딜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약재실로 사용하는 공간에는 방문할 때 마다 닭똥냄새가 지독했는데도 KOMSTA(대한해외의료봉사단) 사무국에 근무하는 두 명의 여직원이 아무런 불평없이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환자들의 질병을 유형별로 통계를 내어 보니 여러 후진국들과 마찬가지로 머리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것과 심장의 통증을 호소하는 것과 영양부족으로 춥다고 호소하는 것과 소화장애를 호소하는 것과 피부 가려움증을 호소하는 질환들이 대동소이했다.
유진규 대사관님이 하루도 빠지지 않으시고 찾아 오셔서 KOMSTA가 의료환경이 열악한 최고 가난한 나라에 와서 땀 흘려 일하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는 표정을 지우셨다.
동티모르 치안을 위하여 주둔했던 한국의 상록수 부대가 2003년에 철수한 이후에 찾아오는 한국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KOMSTA가 해외의료봉사를 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진료 넷째날
대통령부인께서 대통령이 사는 동네에서 진료를 해 달라는 요청이 와서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도로가 산속으로 해발 700미터 높이에 위치한 유치원이었다. 최근에 지어진 유치원은 일본나라에서 무료로 지어 주셨다고 대통령부인께서 말씀하셨다. 진료실도 깔끔하고 산속 고지대여서 후덥지근한 날씨는 피할 수 있었다. 조금 있으니 대통령이 직접 진료현장에 찾아 오셔서 우리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시면서 유머를 섞어 가면서 대화하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아마도 마지막날 진료는 고지대로 자리를 옮겨 조금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우리들이 편하게 진료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모습으로도 보였다.
아이들을 주로 치료하였으며 보호자인 어머니가 치료받고자 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왔는데 한 가정에 평균적으로 4명 정도는 어머니를 따라 왔는데 키가 비슷비슷해서 나이를 물어보니 거의가 연년생으로 구성되었다. 이 나라에는 평균적으로 한 가정에 7~8명씩 자식을 낳으며 산속이라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어두우면 잠들고 피임기구가 없어 생기는데로 낳는다고 하였다. 다리에 피부질환이 많았는데 아이들이 뛰어 놀다가 다친 상처부위에 소독할 만한 연고도 없고 제대로 발을 씻지도 않을 뿐더러 절반가량은 신발도 없어 맨발로 돌아 다녔다.

진료가 끝난 후에는 좀 더 높은 곳에 위치한 대통령 사저에서 COFFEE 접대를 받았는데 동티모르 커피가 세계에서 제일 높은 해발 800미터 이상 지역에서만 자연 생산된다고 말씀하셨는데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시장에서 모두들 커피 몇 봉지는 사들고 왔다.

동티모르 잔상
-해산물과 물고기들이 풍부하나 동티모르가 독립할 때 인도네시아군이 철수 하면서 밉다고 모든 배들을 불 태워버려서 고기잡이 큰 배 가 없으며 근해에서 소량만 잡을 능력 밖에 없어 깊은 바다에는 큰 물고기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황금어장을 이루고 있다고 하였다.
-근해에는 천연가스와 유전의 매장량이 발견되어 선진국의 힘을 빌어 시추탐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동티모르 커피는 자연산이므로 품질이 좋으며 주민들이 손으로 일일이 따서 판매하는데 말리는 기술이 부족하여 원액을 일본으로 수출 하여 다시 비싸게 역수입 한다고 하였다.
-한국의 상록수 부대가 1999년~2003년까지 동티모르 평화유지군으로 주둔하면서 대민 지원사업도 열심히 하여 UN군 사령부로부터 최고의 군대임을 칭찬받았다.
-바닷가에는 산호초와 빛을 발하는 해초가 장관을 이루었으며 해삼과 바닷게와 세발낚지도 마음만 먹으면 손으로 얼마든지 따올 수 있을 정도로 청정해역이었다.  



인도주의 실천, 나눔의 행복

인도주의 실천, 나눔의 행복


KOMSTA는 의료환경이 열악한 ODA 대상국 주민들을 위해 해외의료봉사단을 파견하고 있으며, 

파견국에서 학술교육 세미나, 임상교육 등을 통해 우리나라 고유의 한의학을 알리고 교육하는데 힘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