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MSTA 179차 우즈베키스탄 기고문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진심이 통했던 우즈베키스탄 봉사”
동국대학교 본과 4학년
최인영 학생

전 세계 인류의 건강에 대한 관심으로, 예과 때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에서 인턴을 하며 국제보건을 공부했다. 국제보건의 연장선으로 세계적인 차원에서 건강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활동을 직접 실천하고 싶었기에 해외 봉사를 꼭 가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이번 대한한의약해외의료봉사단(KOMSTA) 의료봉사에 기회가 닿았고, 우즈베키스탄으로 향하는 일주일간의 여정이 시작됐다.
멀고도 가까운 이웃나라
우르겐치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슈켄트에서도 비행기로 3시간은 더 걸리는 먼 거리의 시골 마을이다. 인천공항에서 타슈켄트까지 7시간, 또 타슈켄트에서 우르겐치까지 3시간, 장장 10시간의 비행으로 우리는 봉사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콤스타에서 지금까지 우즈베키스탄으로 수십 번의 파견이 있었지만, 콤스타에서 조차 우르겐치는 처음이었다.
첫 봉사지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번 우르겐치 봉사에는 많은 환자들이 찾아주었다. 1일차에 209명, 2일차에 435명, 3일차에 419명, 4일차에 206명으로 총 1269명의 환자들을 진료했다.
학생 단원으로서 진료보조, 접수, 안내 역할을 맡았다. 매일 역할을 바꿔 진료실 안팎으로 환자들을 마주하며 근골격계 환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질환의 환자들을 볼 수 있었다. 야뇨증으로 밤마다 이불을 버리는 아이, 어릴 때 발생한 경련 발작으로 말을 할 수 없었던 청년, 부인과 질환을 치료하고 둘째를 임신하기 희망하는 여성 등 각기 다른 아픔을 호소하는 환자들로 진료소가 붐볐다.
특히 이슬람 문화권에 있는 국가였기 때문에 그 나라만의 관습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했다. 여원장님께 진료를 받고 싶어 하는 여환자가 있으면 여원장님께 배정을 해드린다든지, 치료할 때 히잡을 벗어야 할 경우 문을 닫아 신체 노출을 가려주는 식으로 말이다.
고려인 환자들도 기억에 남는다. 우즈베키스탄어나 러시아어가 가득한 이곳에서 익숙한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고려인 환자였다. 비록 서툴지만 정확한 한국어로 봉사단에게 환자는 인사를 건넸다. 이번 우르겐치에서의 봉사와 전통의학 과학임상센터 MOU 협약을 계기로 앞으로도 많은 고려인들이 의료 혜택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즈베키스탄과 한국을 잇는 한의학의 힘
하루 이틀 치료를 받고 점차 증상이 호전되며 한의학에 믿음을 가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이번 한의 진료를 통해 한의학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한국에서도 이어서 치료가 가능한지 물었던 여러 명의 환자들이 있었다. 각자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봉사와 의료진에 믿음을 가졌다.
매일 진료를 시작하기 전, 의료봉사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고 봉사의 시작을 알리고자 윤리강령 선서를 했다. ‘나는 인도주의 실천을 위해 의료봉사에 나의 생애를 바친다.’ 한국어로 선서를 읊었지만, 성실할 것을 맹세하는 선서의 진심이 닿았는지 환자들은 매일 우리의 선서를 영상으로 촬영했다. 어느 날은 선서를 마치자 꽃다발을 선물하고 간 아이도 있었다.
어느덧 지금은 한국에 귀국한 지 일주일이 지났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첫날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했을 때는 언어와 음식까지 모든 게 낯설었는데, 어딜 가나 단원들을 환영해주고, 가슴에 손을 올려 감사함을 표현했던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생각나서 벌써 그립다.
환자와 봉사자 사이 통역을 맡아주셨던 통역 선생님이 나에게 ‘Asal(꿀)’이라는 우즈베키스탄어 이름을 지어주셨다. 평균 40도를 웃도는 고온 건조한 사막 대륙성 기후의 우즈베키스탄에서 자양윤조하는 ‘봉밀’의 역할을 하라고 지어주신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봉밀의 역할로서 우즈베키스탄 주민들의 질병 치료에 도움이 됐길 바란다.

약시 보링, 안녕히 가세요
콤스타가 아니었다면 모일 수 없었던 조합의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조화를 이루었다. 조화로써 봉사를 더 따뜻하게 완성할 수 있었다. 또한, 각자의 아픔으로 한의약 진료를 찾고 호전되는 환자들을 보며 다시금 한의학의 가치를 느꼈다.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진심을 다하면 통할 수 있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의 한의사로서 환자에게 진심을 다해 다가가야겠다고 다짐한 계기가 되었다.
일반 단원 역할에 더해 총무 역할을 맡게 됐는데, 총무를 이제까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이런 큰 프로젝트에서 잘해낼 수 있을지 부담이 막중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총무를 함으로써 봉사에 들어가는 많은 분들의 노고를 알게 됐고, 봉사의 기획과 흐름을 배우며 하나의 경험으로써 나에게 또 다른 큰 자산이 됐다.
우르겐치 봉사를 통해 인도주의의 실천, 나눔의 행복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번 봉사를 준비하고 기획해주신 이승언 단장님, 안우식 팀장님, 환자 한분 한분 진심을 다해 사흘 동안 진료를 봐주신 이강욱, 김송은, 박재황 원장님, 이틀 차 봉사를 도와주신 송영일 원장님, 봉사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항상 서포트 해주신 사무국 권수연, 김유리 선생님, 밤낮으로 같이 열심히 일한 김선우, 류세나, 변다빈, 서예은, 송은찬, 임선우, 장다연, 천재원, 황시현 단원,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중간에서 원활한 소통을 맡아주신 나리 선생님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Taxshi boring(약시 보링, 안녕히 가세요)’
KOMSTA 179차 우즈베키스탄 기고문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진심이 통했던 우즈베키스탄 봉사”
동국대학교 본과 4학년
최인영 학생

전 세계 인류의 건강에 대한 관심으로, 예과 때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에서 인턴을 하며 국제보건을 공부했다. 국제보건의 연장선으로 세계적인 차원에서 건강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활동을 직접 실천하고 싶었기에 해외 봉사를 꼭 가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이번 대한한의약해외의료봉사단(KOMSTA) 의료봉사에 기회가 닿았고, 우즈베키스탄으로 향하는 일주일간의 여정이 시작됐다.
멀고도 가까운 이웃나라
우르겐치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슈켄트에서도 비행기로 3시간은 더 걸리는 먼 거리의 시골 마을이다. 인천공항에서 타슈켄트까지 7시간, 또 타슈켄트에서 우르겐치까지 3시간, 장장 10시간의 비행으로 우리는 봉사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콤스타에서 지금까지 우즈베키스탄으로 수십 번의 파견이 있었지만, 콤스타에서 조차 우르겐치는 처음이었다.
첫 봉사지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번 우르겐치 봉사에는 많은 환자들이 찾아주었다. 1일차에 209명, 2일차에 435명, 3일차에 419명, 4일차에 206명으로 총 1269명의 환자들을 진료했다.
학생 단원으로서 진료보조, 접수, 안내 역할을 맡았다. 매일 역할을 바꿔 진료실 안팎으로 환자들을 마주하며 근골격계 환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질환의 환자들을 볼 수 있었다. 야뇨증으로 밤마다 이불을 버리는 아이, 어릴 때 발생한 경련 발작으로 말을 할 수 없었던 청년, 부인과 질환을 치료하고 둘째를 임신하기 희망하는 여성 등 각기 다른 아픔을 호소하는 환자들로 진료소가 붐볐다.
특히 이슬람 문화권에 있는 국가였기 때문에 그 나라만의 관습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했다. 여원장님께 진료를 받고 싶어 하는 여환자가 있으면 여원장님께 배정을 해드린다든지, 치료할 때 히잡을 벗어야 할 경우 문을 닫아 신체 노출을 가려주는 식으로 말이다.
고려인 환자들도 기억에 남는다. 우즈베키스탄어나 러시아어가 가득한 이곳에서 익숙한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고려인 환자였다. 비록 서툴지만 정확한 한국어로 봉사단에게 환자는 인사를 건넸다. 이번 우르겐치에서의 봉사와 전통의학 과학임상센터 MOU 협약을 계기로 앞으로도 많은 고려인들이 의료 혜택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즈베키스탄과 한국을 잇는 한의학의 힘
하루 이틀 치료를 받고 점차 증상이 호전되며 한의학에 믿음을 가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이번 한의 진료를 통해 한의학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한국에서도 이어서 치료가 가능한지 물었던 여러 명의 환자들이 있었다. 각자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봉사와 의료진에 믿음을 가졌다.
매일 진료를 시작하기 전, 의료봉사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고 봉사의 시작을 알리고자 윤리강령 선서를 했다. ‘나는 인도주의 실천을 위해 의료봉사에 나의 생애를 바친다.’ 한국어로 선서를 읊었지만, 성실할 것을 맹세하는 선서의 진심이 닿았는지 환자들은 매일 우리의 선서를 영상으로 촬영했다. 어느 날은 선서를 마치자 꽃다발을 선물하고 간 아이도 있었다.
어느덧 지금은 한국에 귀국한 지 일주일이 지났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첫날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했을 때는 언어와 음식까지 모든 게 낯설었는데, 어딜 가나 단원들을 환영해주고, 가슴에 손을 올려 감사함을 표현했던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생각나서 벌써 그립다.
환자와 봉사자 사이 통역을 맡아주셨던 통역 선생님이 나에게 ‘Asal(꿀)’이라는 우즈베키스탄어 이름을 지어주셨다. 평균 40도를 웃도는 고온 건조한 사막 대륙성 기후의 우즈베키스탄에서 자양윤조하는 ‘봉밀’의 역할을 하라고 지어주신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봉밀의 역할로서 우즈베키스탄 주민들의 질병 치료에 도움이 됐길 바란다.
약시 보링, 안녕히 가세요
콤스타가 아니었다면 모일 수 없었던 조합의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조화를 이루었다. 조화로써 봉사를 더 따뜻하게 완성할 수 있었다. 또한, 각자의 아픔으로 한의약 진료를 찾고 호전되는 환자들을 보며 다시금 한의학의 가치를 느꼈다.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진심을 다하면 통할 수 있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의 한의사로서 환자에게 진심을 다해 다가가야겠다고 다짐한 계기가 되었다.
일반 단원 역할에 더해 총무 역할을 맡게 됐는데, 총무를 이제까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이런 큰 프로젝트에서 잘해낼 수 있을지 부담이 막중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총무를 함으로써 봉사에 들어가는 많은 분들의 노고를 알게 됐고, 봉사의 기획과 흐름을 배우며 하나의 경험으로써 나에게 또 다른 큰 자산이 됐다.
우르겐치 봉사를 통해 인도주의의 실천, 나눔의 행복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번 봉사를 준비하고 기획해주신 이승언 단장님, 안우식 팀장님, 환자 한분 한분 진심을 다해 사흘 동안 진료를 봐주신 이강욱, 김송은, 박재황 원장님, 이틀 차 봉사를 도와주신 송영일 원장님, 봉사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항상 서포트 해주신 사무국 권수연, 김유리 선생님, 밤낮으로 같이 열심히 일한 김선우, 류세나, 변다빈, 서예은, 송은찬, 임선우, 장다연, 천재원, 황시현 단원,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중간에서 원활한 소통을 맡아주신 나리 선생님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Taxshi boring(약시 보링, 안녕히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