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65차 동티모르-오영선 단원

콤스타
2020-05-19
조회수 730

동티모르 의료봉사를 다녀와서 

대한민국에서 경도를 따라 적도건너 남반구로 내려가면 작은 티모르섬이 나온다. 그 중에 동쪽으로 반 정도가 동티모르라는 나라가 있다. 우리에게는 상록수부대를 파견하는 계기로 더 잘 알려지게 된 나라다.
인구 90만이 조금 넘고, 그중에 절반이 어린이인 나라, 450년의 포루투칼의 식민지에서 벋어나자마자 인도네시아에 25년간 강점된 후 동족간의 참상, 아직은 치안이 불안한 나라이다.

언어와 풍습, 생김새가 우리와 사뭇 다른 이국으로 처음으로 의료봉사를 갔다.
그동안 국내에서 한의대학생 때부터 시작한 의료봉사로 여러 산간벽지를 다녔지만 막상 해외에서의 의료봉사라는 설렘과 낯선 곳에서의 진료를 과연 잘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이 교차하면서 인천공항으로 출발하였다.

자카르타를 거쳐 발리에 도착하니 현지시각으로 밤 1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발리에서는 도착한 손님에게 꽃을 목에 걸어 주는 것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손님이 오면 작지만 무엇으로 대접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기분이 참 좋다. 한숨자고 바로 동티모르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 밀려오는 졸음에 한숨 자고나니 스튜어디스가 밖을 보라고 한다.
바다의 빛깔이 일곱가지 색깔을 띠고 있었다. 참 멋진 자연을 가진 나라에 왔구나 싶었다.
비행기에서 보이는 것은 마른 강줄기와 해안선을 따라 간간이 보이는 허름한 집이 조금씩 보이고 온통 산과 바다뿐이다. 어찌된 일일까? 아무리 찾아봐도 논밭은 잘 보이질 않는다. 산들은 벌겋게 살을 드러내고 있어 실감나기 시작하였다.
공항은 허름한 단층건물에서 햇살만 가린 채 입국수속을 하였다. 현지인들은 모두가 강렬한 햇살에 피부가 까맣게 그을려 있었고 눈동자엔 희망이 떠나버리고 절망과 고통의 멀건 힘없는 듯 초점이 없어 보인다.

오랜 식민지생활과 강탈과 종교적 탄압, 동족간의 유혈분쟁으로 생존의 터전은 황폐화되고 거대한 산림은 흔적만 남아있고 그나마도 독립군을 소탕하기 위해 불을 놓아 그대로 살을 드러내놓고 있다.
수도 딜리에는 유엔에서 재건과 복구로 약간의 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고 각국의 대사관과 몇 개의 작은 호텔과 식당이 있었다.
음식은 양식과 중식이 주류를 이루고 그나마 현지인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식량과 물자를 거의 수입에 의존하기에 하루 한 끼로 허기를 달랠 뿐이다.

현지인들의 대부분이 포르투갈의 영향으로 인도네시아와는 달리 카톨릭을 종교로 갖고 있으며 얼마 전에 국교로 명시되었다고 한다.
생활상은 대한민국의 전후의 모습이다. 화전과 산에서 채취한 과일과 주요 수출품인 커피를 야생에서 채취한다고 한다. 새벽부터 어깨에 과일과 채소를 메고 몇 시간을 걸어서 장터로 간다. 조금씩 팔아서 식량과 아이들 학비를 만들 생각에 가장들은 힘든 줄을 모를 것이다. 한국의 부모님들이 자녀를 교육시키기 위하여 힘든 일도 마다않고 열심히 하셨듯이 그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들이 이 나라의 동량들을 키우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16세기부터 열강들에 의한 450년간의 착취, 독립과정에서 동족간의 유혈투쟁 등으로 폐허에서 이제 막 다시 시작하는 섬나라이다. 다민족, 외세에 의한 지배로 문화적인 전통은 이미 많은 것들이 사라진 듯하다. 조금씩 수공업의 형태로 만들어진 옷감, 소품, 목공품들이 조금은 조잡스럽게 느껴진다.
착하고 아주 순수하지만 힘이 없어 자신들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없었던 동티모르인들을 보면서 다시금 한민족의 역사와 전통, 외세의 침략과 조상들이 격어야 했던 아픔들이 가슴에 와 닿는다. 아마도 이 나라가 앞으로 전통과 뿌리를 찾아서 이어가야할 과제인 듯하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이 작은 섬나라가 처한 현실이 비록 어렵지만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서 우뚝 서기를 기원해 본다. 대한민국이 해낸 것처럼.






인도주의 실천, 나눔의 행복

인도주의 실천, 나눔의 행복


KOMSTA는 의료환경이 열악한 ODA 대상국 주민들을 위해 해외의료봉사단을 파견하고 있으며, 

파견국에서 학술교육 세미나, 임상교육 등을 통해 우리나라 고유의 한의학을 알리고 교육하는데 힘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