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5차 KOMSTA 우즈벡 페르가나 의료봉사에 다녀와서…
KOMSTA 해외봉사를 다녀오면 몸이 만신창이가 돼 돌아온다. 작년 161차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파견 때도 그러했고, 이번 165차 페르가나 파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지원할 수밖에 없는 KOMSTA 봉사만의 매력이 있다.
봉사, 특히 ODA라는 이름으로 개발도상국 혹은 그보다 경제적·사회적 인프라가 좋지 않은 국가에 가서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한 찬반은 오래도록 있어왔다. 국내 사전교육에서도 이러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KOICA에서 오랫동안 진행했던 ‘우물 파주기 사업’은 대표적인 보여주기식 봉사 사업이었다고 한다. 얕게 우물을 파서 현재는 모두 말라붙어 쓸 수 있는 우물이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KOMSTA는 해외 의료봉사에 가서 무엇을 하고 돌아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단순히 무료로 한의진료를 해주고 왔다는 사실이 과연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인가? 특히나 우즈베키스탄 의료봉사는 병원이 없어서 의사를 만나지 못하는 오지로 봉사를 가는 것이 아니기에 고민은 더 깊어진다. 이번에 파견된 페르가나라는 지역은 예로부터 실크로드의 중심이었고 현재도 우즈벡 제2의 도시라고 한다. 게다가 KOMSTA팀이 봉사를 하는 곳은 무려 ‘페르가나 국립 의과대학 병원’이다. 진료를 받고자 하면 대학병원 교수를 만날 수 있는 지역이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생각해 왔던 ‘봉사’의 정의가 협의의 봉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형편의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봉사라고 생각해 왔지만 잘못된 정의였다. 그들에게 자생할 수 있는 힘을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분명 들었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을 기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봉사
그런 의미에서 KOMSTA의 우즈벡 봉사는 의미가 상당하다. 현지에서 병원을 운영 중인 의사에게도, 페르가나 국립 의과대학 교수진 및 학생들에게도 교육을 했기 때문이다.
페르가나에는 ‘지크릴로’라는 신경과 의사가 있다. 무려 ‘아리랑 병원’이라는 이름으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의사이다. 한의학을 배우기 위해 한국에 와서 한 달간 진료 참관을 하고 돌아가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번 의료봉사 기간 내내 지크릴로는 콤스타 의료진이 진료하는 동안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이미 침 치료를 하고 있는 지크릴로였지만, 한의사들이 오자 더 배우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 진료실에도 들어와 이런저런 질문을 했고, 알려줄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알려줬다. 다음날 아침에 바로 내 진료실로 오더니, 어제 내게 배웠던 것들을 바로 본인의 병원에 가서 활용했더니 매우 효과가 좋았다며 자랑을 한다.
우즈벡 환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즈벡의 의료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은 금세 알 수 있었다. 특히나 디스크 환자들이 매우 많았는데, 환자들은 현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전혀 호전이 없다며 오곤 했다. 또한 간단한 통증에도 스테로이드 오남용이 심했고, 그로 인한 부작용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었기에 치료를 하면 할수록 좋아지는 환자들을 두고 떠나는 것이 더욱 아쉬웠지만 현지 의료진을 교육했던 것이 더욱 의미 있었다. 당장 환자를 보는 의사에게 실전적인 것들을 알려줄 수 있었던 것도, 앞으로 환자를 보게 될 의대생들에게 한의학이라는 존재를 알린 것도 뜻깊은 일이었다.
마지막 날에 페르가나 국립 의과대학에서 콘퍼런스가 열렸다. 특히 우즈벡이라는 척박한 곳에서 한의학이라는 씨를 뿌리고 계신 송영일 원장님께서 페르가나에 직접 방문해 콘퍼런스를 주최했다. 송영일 원장님, 손영훈 원장님, 최원구 원장님, 설석환 원장님께서 강의와 함께 직접 침 치료 과정을 시연해 참가자들의 큰 관심을 이끌어 냈으며, 그들의 눈빛에서 희망도 볼 수 있었다. 송영일 원장님은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단톡방’을 만들어 한의학 공부자료를 나눠주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들이 쌓이면 앞으로 우즈벡에 한의학을 통한 진료가 더욱 퍼져나가서 우즈벡 국민들이 수준 높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진료의 전쟁, 봉사의 기쁨
굉장히 아름다운 이야기처럼 서술했지만, 진료를 하는 하루하루는 전쟁과도 같았다. 환자들은 물밀듯이 몰려들었고 질서는 지켜지지 않았다. 접수를 담당하는 일반봉사단원들의 수고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진료실 안은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편이었지만, 진료실의 환경 자체는 열악했다. 무릎 높이도 되지 않는 베드 2개를 가지고 의료진 1인당 하루에 70명 정도의 환자를 진료하며 고군분투했다. 진료를 마치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고, 건조한 나라이다 보니 목 안은 타는 듯 건조했다. 그렇게 봉사를 모두 마치고 타슈켄트로 돌아올 때 6시간이 넘는 기차에 몸을 맡겼다. 일주일간 온 몸의 에너지를 소진한 느낌으로, 귀국해서는 며칠간 드러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KOMSTA 봉사에 또 지원할 것인지 묻는다면, 당연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더 많은 한의사들이 이 기쁨을 맛보고, 더 다양한 전공을 가진 일반단원들이 한의학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동참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경태 공중보건한의사
출처 : 한의신문(https://www.akomnews.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53581)
제165차 KOMSTA 우즈벡 페르가나 의료봉사에 다녀와서…
KOMSTA 해외봉사를 다녀오면 몸이 만신창이가 돼 돌아온다. 작년 161차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파견 때도 그러했고, 이번 165차 페르가나 파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지원할 수밖에 없는 KOMSTA 봉사만의 매력이 있다.
봉사, 특히 ODA라는 이름으로 개발도상국 혹은 그보다 경제적·사회적 인프라가 좋지 않은 국가에 가서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한 찬반은 오래도록 있어왔다. 국내 사전교육에서도 이러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KOICA에서 오랫동안 진행했던 ‘우물 파주기 사업’은 대표적인 보여주기식 봉사 사업이었다고 한다. 얕게 우물을 파서 현재는 모두 말라붙어 쓸 수 있는 우물이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KOMSTA는 해외 의료봉사에 가서 무엇을 하고 돌아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단순히 무료로 한의진료를 해주고 왔다는 사실이 과연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인가? 특히나 우즈베키스탄 의료봉사는 병원이 없어서 의사를 만나지 못하는 오지로 봉사를 가는 것이 아니기에 고민은 더 깊어진다. 이번에 파견된 페르가나라는 지역은 예로부터 실크로드의 중심이었고 현재도 우즈벡 제2의 도시라고 한다. 게다가 KOMSTA팀이 봉사를 하는 곳은 무려 ‘페르가나 국립 의과대학 병원’이다. 진료를 받고자 하면 대학병원 교수를 만날 수 있는 지역이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생각해 왔던 ‘봉사’의 정의가 협의의 봉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형편의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봉사라고 생각해 왔지만 잘못된 정의였다. 그들에게 자생할 수 있는 힘을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분명 들었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을 기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봉사
그런 의미에서 KOMSTA의 우즈벡 봉사는 의미가 상당하다. 현지에서 병원을 운영 중인 의사에게도, 페르가나 국립 의과대학 교수진 및 학생들에게도 교육을 했기 때문이다.
페르가나에는 ‘지크릴로’라는 신경과 의사가 있다. 무려 ‘아리랑 병원’이라는 이름으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의사이다. 한의학을 배우기 위해 한국에 와서 한 달간 진료 참관을 하고 돌아가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번 의료봉사 기간 내내 지크릴로는 콤스타 의료진이 진료하는 동안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이미 침 치료를 하고 있는 지크릴로였지만, 한의사들이 오자 더 배우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 진료실에도 들어와 이런저런 질문을 했고, 알려줄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알려줬다. 다음날 아침에 바로 내 진료실로 오더니, 어제 내게 배웠던 것들을 바로 본인의 병원에 가서 활용했더니 매우 효과가 좋았다며 자랑을 한다.
우즈벡 환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즈벡의 의료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은 금세 알 수 있었다. 특히나 디스크 환자들이 매우 많았는데, 환자들은 현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전혀 호전이 없다며 오곤 했다. 또한 간단한 통증에도 스테로이드 오남용이 심했고, 그로 인한 부작용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었기에 치료를 하면 할수록 좋아지는 환자들을 두고 떠나는 것이 더욱 아쉬웠지만 현지 의료진을 교육했던 것이 더욱 의미 있었다. 당장 환자를 보는 의사에게 실전적인 것들을 알려줄 수 있었던 것도, 앞으로 환자를 보게 될 의대생들에게 한의학이라는 존재를 알린 것도 뜻깊은 일이었다.
마지막 날에 페르가나 국립 의과대학에서 콘퍼런스가 열렸다. 특히 우즈벡이라는 척박한 곳에서 한의학이라는 씨를 뿌리고 계신 송영일 원장님께서 페르가나에 직접 방문해 콘퍼런스를 주최했다. 송영일 원장님, 손영훈 원장님, 최원구 원장님, 설석환 원장님께서 강의와 함께 직접 침 치료 과정을 시연해 참가자들의 큰 관심을 이끌어 냈으며, 그들의 눈빛에서 희망도 볼 수 있었다. 송영일 원장님은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단톡방’을 만들어 한의학 공부자료를 나눠주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들이 쌓이면 앞으로 우즈벡에 한의학을 통한 진료가 더욱 퍼져나가서 우즈벡 국민들이 수준 높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진료의 전쟁, 봉사의 기쁨
굉장히 아름다운 이야기처럼 서술했지만, 진료를 하는 하루하루는 전쟁과도 같았다. 환자들은 물밀듯이 몰려들었고 질서는 지켜지지 않았다. 접수를 담당하는 일반봉사단원들의 수고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진료실 안은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편이었지만, 진료실의 환경 자체는 열악했다. 무릎 높이도 되지 않는 베드 2개를 가지고 의료진 1인당 하루에 70명 정도의 환자를 진료하며 고군분투했다. 진료를 마치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고, 건조한 나라이다 보니 목 안은 타는 듯 건조했다. 그렇게 봉사를 모두 마치고 타슈켄트로 돌아올 때 6시간이 넘는 기차에 몸을 맡겼다. 일주일간 온 몸의 에너지를 소진한 느낌으로, 귀국해서는 며칠간 드러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KOMSTA 봉사에 또 지원할 것인지 묻는다면, 당연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더 많은 한의사들이 이 기쁨을 맛보고, 더 다양한 전공을 가진 일반단원들이 한의학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동참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경태 공중보건한의사
출처 : 한의신문(https://www.akomnews.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535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