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MSTA, 네팔에 한의학 봉사 깃발을 (2)

-- 단기봉사 뿐만 아니라 중기봉사중

최 황 금

 

26일 일요일은 네팔에서 2008년 왕정이 무너지고 최초로 이루어지는 국회의원 선거인 역사적인 날을 구경했다. 통역하는 사람이 예전의 상황을 봐서 폭동이 일어나거나 혹 위험한 일에 휩쓸릴 수 있으니 밖으로 다니지 말라고 해서 궁금해 게스트하우스에서 TV를 봐도 네팔어로만 나와 갑갑할 뿐이다. 여기는 선거를 지역별로 나누어서 해 결과는 한달 뒤에 알 수 있다고 했다. 좋은 국회의원들이 많이 뽑혀 의료시설도 쉽게 접할 수 있고 도로정비가 제대로 되어 먼지 속에 사는 일이 없기를 바랄뿐이다.

진료 2주 시작의 첫 날 월요일 오전에 재진환자가 와서 증세가 좋아졌다고 환호성에 큰소리로 요란하니 옆방에서 일하던 콤스타 직원인 소영씨가 무슨 사고난 줄 알고 놀라서 달려왔다. 우리는 어깨를 으슥대며 너무 좋아했다. 일주일이 지나니 재진환자들이 서서히 많이 오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침 맞기 두려워하던 환자들도 편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침을 맞는다. 물론 지금도 초진환자 중 무서워해 설득하다가 침 5개로 협상을 봐 놓는 경우도 있지만...

처음으로 오전시간 환자가 많아 점심시간을 넘겨 점심을 먹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흐믓하고 뿌듯하다. 지난 주에 이어 진료진들이 조금씩 아파지기 시작한다. 먼지가 많아 흐흡기가 안좋아 잔기침에 가래가 나오고 두 분 한의사들은 한국과 약간 다른 상황에서 환자를 보고 대화가 잘 안되고 약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최선의 치료와 처방에 신경 많이 쓰고 오후에 환자가 몰리기 시작하니 피곤함을 더 빨리 느끼시는듯하다. 그럼에도 진료보조인 우리들과 요리사, 통역사들까지 아픈 곳을 봐줘가며 스스로 치료해가며 시간 날 때마다 각자 맡은 환자증상과 치료법을 이야기하고 더 나은 치료를 위한 노력에 감탄이 절로 난다. 이곳 요리사가 한식을 요리해주니 처음에는 신기하고 놀랍고 감사했는데 사람 입이 간사해서 이제는 양념도 많이 안되어 있고 고기가 올라오지 않아 불만을 갖는다. 이준한의사는 반찬이 안맞는지 밥을 건더기도 많지않은 국물에 말없이 말아드시더니 아예 달걀 한 판을 사서 불평없이 조용히 삶아먹고 계셨다. 또 박재은한의사도 먹어도 허기진다고 하지만 음식보다 환자가 먼저라고 담담하게 견디신다. 의술도 뛰어나지만 20대 젊은 나이에 성품 또한 훌륭해 저절로 감탄을 하게된다.

요리사가 점점 우리의 상황에 적응해 과일과 간식도 주고 닭볶음탕이 나올 때는 환호성이 나왔다. 특히 아침과 중간에 먹는 짜이에도 이제는 익숙하고 젊은 분들은 여기 음식인 달밧이 맛있다고 좋아해 가끔 식사대용으로 먹기도 한다.

여기는 무거운 짐은 머리에 끈을 연결해 등 뒤로 맨다. 아기도 바구니에 담아 그렇게 지고 온 엄마를 보고 우리는 너무 신기해하고 구경했는데 그 안에서 너무 편히 자는 갓난 아이 모습은 더없이 예뻐 그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1시간 넘게 걸어 생애 처음으로 진료를 보러 딸과 함께 온 엄마, 물소를 돌보느라 팔과 다리가 아파 어렵게 시간내어 온 사람들 등 카스트제도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몸을 마주하며 피부를 접촉해 침을 놔주는데 너무 고마워하고 친밀함을 느끼는 듯하고 우리 진료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돌아가며 '라마스떼'를 하고 갈 때 우리 또한 기쁨을 느낀다. 또한 몇 일간이 아닌 중기로 2달 가까이 꾸준히 치료하면 어느정도 많이 완성도 높은 치료를 할듯하여 다행!

28일 화요일은 네팔인이어도 네팔어를 모르는 소수민족이 있어 이중통역으로 어렵게 진료를 보는 헤프닝도 있었고 첫 날 오고 좋아 또 왕복10시간을 걸어 가족을 데리고 온 사람도 있어 우리는 먼지 들이마시며 아픈 다리로 걸어오는 것이 더 아파지지 않을까 내내 걱정하며 우리가 점점 늘어가는 환자를 돌보며 힘들지만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 같아 또 다시 정신무장을 하게 되었다.

"한의약치료는 의사와 환자가 서로의 몸을 맞대고 체온을 느끼고 세밀한 경락과 신경의 흐름을 감지하고 예민하게 반응하여 아픈곳을 치료하는 이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치료 패턴같아요 의사의 명민하고도 세심한 손길이 환자의 아픈 곳을 두드려 깨워 섬세하게 회복시키는 매직같아요 어떤 발전된 문명의 최첨단 기술도 인간의 정교한 느낌과 몸으로 감지할 수 있는 형언할수 없는 신비를 인공지능들이 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의 진료모습과 오늘 사진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어요. 두 분 한의사선생님께 갈채를 보냅니다 그런 것을 보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옆에서 진료보조하며 감동하고 카톡단체방에 올린 박양수씨의 글.

의료시설을 이용하기 힘든 여기 환자들의 침 효과가 한국보다 훨씬 더 큰듯하다. 처음 침 맞고 온 재진환자들이 30-50%통증이 줄었다고 밝은 표정으로 오고 약을 잘 먹지 않기 때문에 함께 나누어 준 약효과도 더불어 상승작용을 하는듯하다. 한의사분들은 직접 시장에 가서 음식으로 꾸준히 치료에 도움되는 방법 모색하기도 했다.

여기의 여자들은 20대 초반까지 대부분 결혼하는데 30대 초반 일본에서 동물사육하여 돈벌고 기술을 터득하여 여기서 물소 사육하는 씩씩 용감한 여성이 침 맞으러 와서 주변에서 시집 안간다고 난리라고 속상해 해서 돈벌고 야무지면 젊고 좋은 남자 만난다고 격려와 농담하며 웃기도 했다.

30일 목요일은 오전내 안개가 끼어 으실으실 추운데 여기도 서서히 겨울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오전에는 환자가 적다가 점심 직전 환자몰려서 점심을 늦게 먹고 먹는 내내 많이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에 밥 먹고 있는 것이 부담스러울 정도이다. 드디어 처음 대기표 사용했고 오후내내 정신 없이 환자들을 돌보느라 바쁘고 환자들을 다 보기 위해 침 시간을 1-2분 줄이기도 했다. 드디어 입소문이 나서 점점 환자들이 많아질듯! 오늘은 최대 90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갈수록 환자가 많아지며 접수실 맡은 인숙씨와 소영씨의 붐비는 환자 숫자 조절과 진료실 배분 등 바쁘지만 한편 기쁜 일들로 중요한 역할로 대두되었다.

121-금요일, 오늘은 이곳 이슬람교 관련 휴일이다. 아침부터 꾸준히 환자가 몰려오고 있다. 여기에서 좋은 직업은 의사와 교사 정도이고 영국용병으로 가서 17년 이상 근무하면 연금도 나와 선호직업이란다. 통역하시는 분도 아들이 1년째 영국용병으로 가 있어 자부심이 가득하다. 신체심사와 자격이 까다로운데 마지막 관문은 높은 사람과 연줄이 있든지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에 씁쓸하다. 여기 환자 중 영국용병 남편 둔 둘째부인 할머니가 오늘로 6번째 방문이다. 병원혜택도 가능할텐데 자신의 치료뿐 아니라 오지 못하는 할아버지 약까지 타가며 침50개 놔달라고 욕심을 부린다. 다행히 아픈 효과가 90% 나아졌다고 해 이제 다른 통증이 있을 때 오고 다른 환자와의 형평상 직접 오셔야만 치료와 약이 가능하다고 좋게 설명해 드리고 서운하지 않게 마무리를 지었다. 우리의 의료봉사가 없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오후에는 마지막 맘처럼 장애 가진 손녀를 데려온 할아버지, 다운증후군 같은 아들을 데려온 엄마의 절절한 사랑에 비해 우리가 침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약소해 안쓰러움에 마음이 아프고 내리사랑은 세계 어디에서나 공통적임을 절감한다. 오늘은 기다리는 환자가 너무 많아 돌려보내는 사례가 생기며 118명 최대의 진료숫자로 마감했다. 초진과 재진이 다 늘어난 기록이다. 환자 숫자도 중요하지만 진료의 질도 중요한데 숫자가 갈수록 늘어나면 그것도 또 다른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행복한(?)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