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MSTA, 네팔에 한의약봉사의 깃발을


네팔에 중기한방의료봉사 2달 계획으로 진료보조로 참여하여 온지 벌써 2주일! (콤스타에서 활동하는 한의사 남편 귄유와 30년의 교사생활을 마치기 전 나의 인생 제2의 시작으로 2년 전 따 놓은 간호조무사 자격증으로 2개월의 네팔 한의의료봉사를 신청했다)

참 빠르다. 적응훈련으로 3일간 카투만두에서 어설프게 기본 네팔언어를 배우며 카멜거리를 돌고돌며 먼지를 뒤집어쓰고 복잡한 상가를 돌며 이제는 어느정도 익숙해졌으니 우리의 의료장소인 다딩의 한적한 시골도 접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중앙선도 제대로 안된 나름 고속도로?와 비포장도로를 덜덜거리며 4시간 정도 와보니 카투만두가 허름하고 복잡하게 도로공사를 했어도 역시나 수도이구나를 실감했다.

5일째,

9년전 독일팀들이 진료실 만들어 2년전까지 해마다 몇 일씩 썼다는 우리의 진료장소로 가보니 썰렁한 건물에 황량한 시설은 어떻게 만들어야하나 당황스러운데 두 분의 젊은 한의사선생님들은 침을 놓을 침대만 있으면 모든 것은 감수하고 잘할 수 있다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말에 정신이 바짝든다. 그렇지! 나는 의료시설이 잘 안된 곳에 그들에게 의료를 하고 우리의 한의약치료를 알리러 온 한의약의료 보조로 왔는데 시설을 탓하다니...

진료 한의사 2, 진료보조 3, 행정보조1, 현지 가이드 겸 통역 2명은 3일동안 중고 침대 8개를 지원받고 다 떨어진 커튼, 낡은 책상, 흙집 등을 진료실로 변화시키며 나름 무에서 유가 창조되어 너무 기뻤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가끔 도인같은 형형한 모습으로 압도하는 준샘과 다채로운 팔색조의 매력과 탁월한 재능을 보여주는 미모의 재은샘 두 한의사샘님들 너무 훌륭하세요 존경합니다 총괄하시는 네팔을 닮은 미소천사 소영샘 보석같아요 황금샘의 작가정신과 분위기 업시키는 탁월한 능력에 힘입어 일상을 유쾌 상쾌 통쾌 하게 만들어 신나게 하고 멋쟁이 내친구 인숙의 세심한 배려로 저는 덤으로 얹혀 가고 있어요

상큼한 아니따, 노련한 나라연샘,정열적인 가네스-가이드 겸 통역-샘 등 환상의 드림팀을 만나게 되어 뭔가 일을 제대로 만들것 같은 행복한 생각으로 오늘 하루를 접습니다." -진료준비를 하며 단톡방에 남긴 진료보조로 오신 박양수(네팔어를 적극적으로 배우며 네팔인들과도 친화력을 보이며 온몸으로 대화함)씨의 글"

우리는 이렇게 카톡 단톡방을 통해 서로를 격려하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와도 잘 극복할 것 같은 행복예감을 꿈꾸며 진료 첫 날을 맞이했다.

우리는 A.B팀 진료실을 나누고 한의사.진료보조, 통역과 예진실로 나누어 20(월요일) 부터 진료를 시작하며 홍보도 없었고 26일 처음으로 실시하는 국회의원선거에 관심이 쏠려 환자가 너무 작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진료소가 조금 올라와야하는 언덕인데도 첫 환자인 운전수아저씨를 시작으로 몇 분의 환자들이 오고 오전 진료 끝날 쯤 더 위쪽에 위치한 학교에서 두 분 선생님이 학생들을 데리고 견학오셔서 진료과정도 보고 관찰하며 설명을 들었다. 또 아프고 원하는 학생들은 진료를 했는데 낯선 진료에 신기해하고 부끄러워하며 구경꾼들이 더 많아 첫 날의 어색함을 잠재웠다.

첫 날 총 40명의 환자를 봤는데 환자들과 심지어 성장기 학생들까지도 영양실조와 그로인한 근육부족, 수분섭취 부족으로 저혈압이 많고 목욕도 자주 안해 피부질환도 많고 도로 포장이 안되어 차가 다니니 먼지가 너무 많은데 슬리퍼를 신으니 먼지가 수북히 쌓인 거친 나무 등 같은 발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만 들었다. 심지어 아직도 2년 전 일어날던 지진 피해 후유증을 앓는 학생도 있었다.

둘째 날은 환자가 50명으로 전날보다 더 많아 신기해 어떻게 알고 왔냐고 물어보니 진료소보다 더 윗동네에 살아 가는 길에 봤다고 하거나 동네사람에게 들어다는 것으로 의료시설을 이용하기 힘든 다딩의 시골사람들에게 우리의 진료가 관심거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 좋은 진료로 더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고 한의학을 널리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생후 2달된 아이를 업은 딸이 모시고 온 할머니, 소아마비인 4살아이를 데려온 어린 엄마의 애절함과 간절함을 다리운동 꾸준히 하라고 하며 영양부족인 둘에게 보약관련 약 밖에 줄 수 없을 때는 가슴이 먹먹하고 여성들 대부분은 영양부족으로 생리불순이 있기도 어떤 환자는 발바닥에 침놨는데 신발을 안 신어 당황했고 가는 것이 걱정도 되었다. 그래서 다음부터 발바닥에 침을 놓을때는 위생을 생각해 그 자리에 밴드를 붙여주기로 했다. 소화가 안되는 경우 많이 못먹어 소화력이 없어지고 그로 인해 악순환이 된다는 한의사님의 말을 들으니 중년에 들어 살이 쪄서 고민하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중고침대에 메트가 깨끗하지 못해 햇빛에 말리고 알코올로 닦으며 걱정되어 시트만 새 것으로 깔았는데 환자들 생각에 진료실이 깨끗한지 입구부터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일도 많았다.

백납병의 젊은 환자들도 많은데 아마도 영양부족으로 자가면역증이 떨어지며 생기지 않을까하는 한의사님의 진단에 참 안타까운 마음이 더해진다.

목요일부터는 재진환자들이 조금씩 많아졌다. 재진할머니 한 분은 좋아져서 나머지도 좋아지게 또 치료받고싶다고 옷도 빨리 벗으며 적극적으로 임하는 모습에 우리는 기분도 좋아지고 더욱 진료의 사명감이 고조된다. 더 아파졌다는 재진환자의 말에 긴장이 바짝되었으나 긍정의 말에 우리와 다르게 옆으로 고개를 젓는 네팔의 의사표현법을 잘못 해석하여 생긴 해프닝도 있었고 통역하는 분의 말에 통증이 50% 감소됐다는 말에 환호성을 질렀다. 금요일에는 작년에 한의사들 의료봉사에 침 맞고 좋아졌고 봉사팀이 또 왔다는 소식에 왔다며 한방치료에 무한신뢰를 보이는 분을 보니 '! 긴 시간 잊지않고 기억하고 찾아옴에 기쁘고 이게 보이지않는 광고이자 우리의 한의학과 문화가 널리 퍼져나가는 증거구나' 싶어 우리 모두 행복해하고 1회성이 아닌 꾸준히 지속의 필요도 느꼈다. 열악한 의료환경에 체온을 처음 재보는 사람도 있고 영양부족으로 기운만 돋아줘도 통증이 좋아질 환자가 많고 살이 없고 뼈만 남아 침 놓기가 안쓰럽다는 한의사선생님들의 말에 눈물이 나올뻔 했다. 우리는 간간히 의료에 필요한 네팔어를 배우며 서로 어색해 웃기도 하고 그것이 그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가는 길이라는 생각에 더 열심히 배우며 통역하는 나라현씨가 가르쳐 준 한국의 아리랑 같은 네팔 노래 랫섬 피리리도 배웠다. 여기서 진료하며 내내 생각하는 것, 행복지수!

나도 단순하고 둔해 행복지수가 높다고 자부하며 살았는데 이렇게 열악함 속에 살면서도 불평이나 부정적인 표정보다는 참 해맑고 순수해보여 어떤 때는 그들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나를 더 민망하게 만드는 네팔의 다딩 사람들! 다시금 내 삶을 되돌아보며 법정스님이 말했던 무소유의 역리를 되세겨 본다. 그러나 이런 그들의 생활태도는 권력의 부패를 묵인시키고 변화를 더디게 하는 근원은 아닐까하는 안쓰러움도 갖게 했다. 앞으로 2주 정도는 침에 대한 신뢰와 인식의 변화로 환자를 늘려보자는 생각으로 우리는 1주일 진료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