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1차 네팔 한의약해외의료봉사 후기

 이병기 한의사 (울산시한의사회 회장, 대동바른한의원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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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물갈이 때문인지 설사를 하고 전례없는 폭염의 열대야에 새벽시간 치러지는 올림픽 중계방송과 겹쳐 컨디션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모 한의원의 처방으로 3세 아동이 완전 탈모가 일어났다며 연일 인터넷에 논란은 뜨겁다. 저장하고 쌓아올리기 좋아하는 한국에서 펼쳐지는 일주일간의 번잡함은 네팔에서의 봉사활동이 신기루처럼 아련하게 느껴진다. 차일피일 시간의 가속에 휩쓸려 기억이 사라지기전에 네팔 현장의 추억을 더듬어 또 잊혀질 일이 아니라 기록된 사실로의 변환을 시도해 본다.

 

이번 네팔 의료봉사는 울산광역시 한의사회라는 회원가족 단독 팀으로 해외의료봉사를 펼친 지 7번째 원정이고 콤스타의 141차 한의약해외의료봉사가 된다. 대상국이 네팔로 정해지고 막연하게 8000m 고산 14좌 중 7곳이 있는 세계의 지붕, 20154월에 발생한 지진피해지역 정도로 알고 있던 상식에서 나름 네팔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단톡으로 참가 회원 간 현지상황을 모니터하며 쉴틈 없던 한국에서의 진료실 문을 잠시 내리고 네팔을 만나러 떠난다. (이것이 유일한 탈출일지도 모른다)

 

725일 월요일 

한의사 10명 가족26명 총 단원 36명으로 구성된 봉사단원은 74일 울산에서 모여 발대식을 하고 725일 월요일 1330분 인천공항을 출발 네팔 카트만두로 발진하였다. 

며칠째 등 어깨가 결리고 통증에 시달리던 것이 비행기가 이륙하니 홀가분해졌는지 한결 가벼운 것 같다. 늘 괜찮다 했지만 한국의 50대 가장으로써 짐이 무거웠구나 싶어진다. 마침 황정민 주연의 히말라야라는 영화를 모니터로 보며 6시간 반 가량의 비행을 이어간다. 좀 더 비우고 내려놓고 가벼운 봉사의 시간이 되리라 생각하며.... 

카톡으로 날아든 오늘의 문구 두려움이 진정한 패배의 원인이다. 나를 알고 진심을 다해 공포와 두려움을 극복하라때마침 처음 가는 이국땅에서의 여정과 어울리는 말이다. 한국과의 통신도 이것으로 돌아오는 날까지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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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 30분의 비행과 3시간 15분의 시차를 빼니 현지시간 415분 카트만두 트리부반공항에 도착하였다. 개인별로 할당된 봉사물품이 든 박스를 찾고 공항을 나서니 통관검사가 까다롭다. 38개의 박스를 일일이 물표를 확인하고 내용을 보고서야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번 봉사를 주선하고 통역 가이드 등의 모든 지원역할을 할 네팔 ngo단체 EPF 대표인 라켓스와 일행의 환영과 안내를 받으며 네팔에 첫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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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은 카트만두 상그릴라 호텔에서 출범식과 단원소개 진료일정에 대한 간략한 브리핑을 마치고, 각자 배정된 호실로 이동하여 잠을 청한다. 내리자마자 시작한 비는 밤을 새워 내리고 있다. 7월 우기의 진정한 면모를 모른 체 그렇게 밤은 깊어간다.

 

726일 화

카트만두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7시에 버스 두 대로 나눠 타고 봉사현장으로 이동한다. 100여키로 떨어진 다딩까지 고속도로라고는 하는데 좁은 2차선 포장도로는 중간 중간 패인자국으로 울퉁불퉁하고 뻘과 토사로 도로사정은 열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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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토바이와 트럭, 버스와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도로인지 인도인지 구분 없이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시 외곽을 벗어나 고갯길을 들어서니 구름속 얼핏 나타나는 산 발톱은 거대한 공룡이 숨어 있는 듯 보일 듯 말듯 초행자의 눈에는 더 깊고 높아 보인다. 이렇게 4시간여 도로를 달려 다딩에 도착하였다. 이곳부터 살얀타 까지는 산길 비포장 로라 30여키로 4륜 군용트럭을 개조한 버스로 바꿔 타고 이동해야 한다. 시장 만두가게에서 만두 몇 조각과 바나나 하나씩을 점심 대용으로 때우고 고갯길을 향한다. 출발하자마자 뻘밭에 바퀴는 몇 바퀴 헛돌고 구불구불 덜컹덜컹 처음에는 놀이시설 바이킹이라도 탄 듯이 탄성을 지르며 신나하던 일행은 3시간여 이상 이어지는 오프로드 산길에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두어 번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산 고개를 넘고 다시 굽이굽이 다랑이논과 옥수수 밭이 펼쳐진 내리막길을 돌고 돌아 4시경 살얀타 빌리지 아루가트 라니뽀우아 중등학교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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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풀고 다음날 진료할 시스템을 짜고 예진,진료팀,약재, 안내 파트에, 진료의사,가족 봉사자, 현지통역봉사자 별로 팀을 꾸리고 사전 점검을 모두 마쳤다. 꼼꼼히 빠진 부분이 없는지 살피고 현지 지원팀과 함께 개소식 세레모니를 한다. 지역 유지는 다 한 말씀을 하는지 길고 장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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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개소식 뒤에 트레킹 쿠커로 다니는 현지 조리사들이 준비한 한식을 맛있게 먹었다. 이들은 학교의 빈교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봉사팀의 식사를 전담하는데 티벳에서 넘어온 몽골리안들이라 모습은 흔한 이웃집 아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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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여행의 기분이 남아 들뜬 기분으로 현지 숙소인 게스트 하우스로 이동 각자 방 배정을 받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동보원장님과 둥국원장님 아들 그리고 글을 적는 한사람 이렇게 세명이 룸 메이트다. 밤새 비는 내리고 새벽녘 지붕에서 새는 비가 방바닥이 흥건할 정도로 고였다. 속도와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다가 이제 진정한 생존의 현장 서바이벌이 시작된 느낌이다. 어설프게 생각한 봉사의 마음을 다시 점검하며 무거운 몸은 침대로 스며든다. 

 

727일 수 

나마쓰떼!

드디어 진료 첫날이다.

상기된 마음에 아침 일찍 일어나 출발 전 마을을 둘러본다. 여름철 내내 우기로 습하고 빛을 보지 못하는 황토의 시골집은 옛날 강원도 너와집 같이 나지막하고 부엌아궁이는 밖에 있고 안은 흙바닥 그대로 생활한다. 나무평상이 침대역할을 한다. 황토가 시퍼렇게 이끼가 끼어 습한 냄새가 가득하다. 이들이 하는 아침 일과 중에는 황토를 물에 개어 푸른 이끼를 닦아 내는 일이다. 황토가 거습하고 살균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출발하기 전 현지 가정집 몇 곳을 둘러보고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 주며 기념사진을 찍고 차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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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빨간 전통복장인 싸리를 두르고 길게 줄을 서있다. 3진료실 한의사 이병기, 가족 봉사자 김성진, 그리고 라케스의 조카 샘이 현지인과의 통역을 맡아 진료를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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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도 처음이고 한국 사람도 처음 보는 모양이다. 조금씩 진료를 하며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조혼의 풍습으로 20살이면 보통 결혼을 하고 애가 둘 딸린 엄마다. 다랑논 농사에 여름철 풀 제거에 맨발로 하루 종일 일을 하다 보니 피부는 코끼리 가죽처럼 단단하다. 상처는 치료하지 않아 곪아 있고 등은 굽고 모두 소화불량과 두통을 호소한다. 4일간 어떻게 치료를 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 그냥 손을 꼭 잡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뿐이다. 정성껏 시침을 하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처방을 한다. 60년대 내 엄마 누이가 이랬을까..? 한세대 만에 우리가 이룬 변화를 이들도 경험 할 수 있을까.? 꼭 그래야 한다고 샘에게 이야기 하면 알아듣는지 모르는지 웃기만 한다. 고립된 자연 속에서 숙명처럼 자연에 순응해가는 다딩의 사람들에게 바깥세상이 자꾸 변화를 요구한다. 통하지 않는 말에 자신의 건강을 챙기도록 한 마디라도 더 알려드린다. 알아들었는지 단네바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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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첫째 날 370여명을 돌보고 또 같이 산길을 돌아 숙소로 돌아온다

네팔 산악인들이 즐겨 부른다는 레삼삐리리를 합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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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일 목 

단네바드(감사합니다)

수버비하니(아침인사)

현지어가 조금씩 입에 오르내리고 익숙해져 가는 아침 몸은 무겁고 기상이 힘들어진다수일 째 내린 비로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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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기상 730분 출발 8시 도착 예정으로 2일차 진료를 위해 버스로 이동하는데 중턱에 산사태로 도로가 유실되었다. 구름사이 계곡은 굽이굽이 자신의 힘과 속도로 아랑곳하지 않고 흘러간다. 모두 차에서 내려 도보로 진료소를 향해 다시 출발.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도보로 이동하는 어려움 속에 오히려 현지의 모습을 더 가까이서 살펴보는 기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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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없이도 잘자라는 벼사이로 네팔 허수아비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이곳도 마을마다 큰 나무아래 부처상을 모시고 있는데 알고 보니 (같이 봉사에 참여한 동보한의원 원장님이 힌두신화에 정통하신 것을 여행하면서 알게 되었다.) 인도 힌두의 3 주신인 브라흐마,비시뉴,시바가 있는데 나무아래 모셔진 그림은 시바신과 아내 파르와티 그리고 시바의 아들 코끼리상의 가네사가 있고 이동 수단인 황소 닌다가 그려져 있다. 신화의 내용은 풍부하고 삶의 질곡처럼 수많은 인생사의 이야기들이 풍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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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여 도보로 이동하고 조금 늦었지만 이틀째 진료를 이어간다. 첫날 온 재진과 초진이 섞여 더 바쁘게 돌아간다. 우기의 후덥지근한 열기가 지친 그들이 더 힘들어 보인다. 혹시나 훈침이라도 날까 조심조심 시침을 하고 또 그들의 삶을 잠시 들여다 본다. 어릴 때 다친 다리를 제 때 치료를 하지 못해 반불구가 되어 온 환자. 90이 넘어 겨우 아들에게 업혀 의사 한번 만나고 가시겠다고 오신 할머니, 많은 사연 만큼 질병의 깊이는 더 깊다. 예진부터 약제실 까지 서로 다른 공간이라 각자 맡은 자리에서 역할에 충실하다 보니 어느듯 하루 진료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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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위에 지친 진료팀을 위해 저녁을 닭백숙으로 준비했다. 봉사는 손톱만큼하고 대접은 배불리 받으니 오히려 미안해 진다. 산길의 복구도 삶의 연속성을 유지하듯 복구가 되고 돌아오는 길은 탄력이 붙어 한결 가볍고 즐거운 분위기가 역력하다.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 던가 네팔이 숨김없이 다 보여준 속내에 벌써 현지화가 다 되었다. 현장에서 밥을 짓고 접수하고 안내와 현지인 질서를 유지해 주던 현지 봉사단 일행과 밤 늦게까지 이야기가 길어졌다.


729일 금 

네팔의 기후는 7-8월 우기동안 일 년치 비가 모두 온다. 처음 기대하던 고산이 병풍처럼 둘러져있는 맑고 고요한 산골의 이미지보다 일주일 내내 비가 반복하고 햇살보기는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려운 우중충하고 습한 날씨다. 흰색의 싸늘한 냉기를 기대하고 보면 습하고 더운 지금이 믿기지 않는다. 상상만으로 네팔의 본모습을 알수 없다. 그만큼 고산은 구름 속에서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지난밤 팀들과 조금 과음을 했는지 몸은 무겁고 가는 길이 더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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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은 먼 길을 새벽부터 오거나 어제 진료를 받지 못해 주변에서 비박을 한단다. 아침부터 식사도 하지 못하고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장사진이다. 미리 따뜻하게 준비되어 있는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진료를 시작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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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내내 진료가 밀려 치료하는 손이 더 바쁘다. 통역을 하는 성진이도 샘도 말수가 짧아지고 지친 모습이다. 잠시 햇볕이 날 때면 진료실 안은 찜통같이 덥고, 지친 환자들이 가끔 훈침이 발생한다. 진료가 끝나갈 무렵 속이 답답하다며 가슴을 두드리는 60대 중반의 환자를 진료하였다. 통역은 짧고 진료는 바빠 우선 중완 압통이 심해 가볍게 사관과 중완을 시침하고 진료를 이어갔다. 종이 울리고 발침을 하는데 환자 의식이 없다 꼬집고 흔들어도 반응이 없다. 순간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한국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응급상황이다. 맥박과 동공반사를 확인하니 동공이 풀리고 빛에 반응이 없다. 급하게 김동욱 진료부장을 호출하고 심장압박을 10여회 반복하는 순간 컥 하면서 환자의 호흡이 돌아왔다. 그러다 몇 번을 혼절하기를 반복하고 겨우 호흡과 맥이 안정이 되어 현지 보건소로 후송하고 한숨을 돌렸다. 뒤에 안 일이지만 어제 접수를 하고 오늘 오후에야 진료를 받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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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면서 빈속에 술을 먹고 취한체로 덥고 습한 여름에 기력은 탈진한 상태이니 얼마나 위험한 순간인가! 급한 진료상황이라 방심한 순간 위험이 찾아온다는 것을 몰랐다. 봉사라는 이름하에 안일했던 것이다. 위험을 살피고 최선을 다해 진료에 임하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며 응급대응에 개인적으로 큰 공부가 되었다. 무거운 책임감으로 진료실을 나선다. 식사 후 임상발표 시간에는 박진호 원장의 발목염좌 관련 강의가 이어졌고 토론시간에서 봉사 팀에게 진료실 응급상황의 대처에 관한 교육과 메뉴얼이 필요하다는 사후보고를 하고 일정을 마친다. 일상적이지 않고 외지에 나와서 긴박한 상황에서야 본연의 모습 진면모가 나타나게 된다. 긴장이 풀리는 순간 위험은 늘 곁에 있다는 것을 세삼 알게 해주었다. 마나슬루 산신에 감사하며 긴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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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일 토 

누군가 간절히 기다리던 아침은 아무런 일 없는 듯이 또 하루를 시작한다. 끊어진 길로 통행이 어려워 우회도로를 도보로 이동하고 반대편에서 온 차를 타고 진료실로 이동하였다. 한국에서 현기증 나는 변화와 속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자연의 속도와 변화에 순응하는 현지인들에게 우리도 동화 되어간다 

봉사현장은 마나슬루 탐험로로 가는 입구라고 한다. 여기서 8시간 정도 걸어가면 베이스켐프다. 8156m 영혼의 산이라 불리는 이 산은 오늘도 그 영험한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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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혼수를 헤매던 레알 쁘삼이 아침에 회복이 되어 간단하게 맥을 확인하고 주의를 당부하였다. 몇 번을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간다. 지난 시간의 걱정과 불안이 사라지고 다시 힘을 내어 마무리 진료를 이어갔다. 

이제 간단한 말은 통역 없이 바로 해결하고 서로 얼굴도 익숙해졌다. 약재와 여분의 파스 등을 모두 소진하려고 분주하게 챙기고 진료실은 우기에 잠시 나온 햇살로 후끈 달아오른다. 약재가 동이 나고 진료를 마무리 하면서 모두들 이곳에 다시 올 수 없을 거라는 이제 다시 보지 못한다는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이었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게 된다. 따가운 햇살아래 예의 그들만의 기나긴 세레모니를 마치고 모두들 얼굴이 빨개진 다음에야 다딩 샬얀타지역에서의 의료봉사가 마지막이 되어 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이유로던 만남은 서로의 색깔이 서로에게 공평하게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얻고 서로의 존재를 기억하며 이별을 준비한다. 그들이 정성껏 준비한 양고기와 술을 나누며 짧았던 4일간의 현장은 각자의 휴대폰 속에 사진으로 저장을 하며 마무리를 지었다. 멀리 마나슬루의 모습은 구름에 가려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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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1일 (일)

오늘은 샬얀타지역 봉사현장을 철수하고 다딩을 거쳐 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까지 장장 10시간의 대 이동이다. 

진료시간에 만났던 그들 삶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이해하는 시간이 되길 기대하며 다랭이논으로 둘러싸인 산길을 따라 출발! 올 때 보다는 한결 리듬을 타며 가벼운 마음으로 굽이길을 돌아 내려간다.


네팔하면 생각나는 순백의 나라, 설산만큼 순수한 사람들이 사는 대지, 가난해도 행복지수가 높은 무욕의 삶 ―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딱히 그 이미지를 만나기는 상상이상으로 어렵다. 네팔을 다 이해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지만 네팔의 국기처럼 청, 홍 백 세 가지의 색을 다 볼 수 있어야 제대로 네팔을 보았다고 한다. 백은 그야말로 히말라야를 감싸는 설산 트레킹, 청은 산악의 반대 밀림으로 코기리 코뿔소 호랑이가 노니는 차트완 국립공원, 홍은 카트만두 밸리의 세계문화유산 순래 이렇게 크게 셋으로 여행을 한다고 한다.


포카라는 안나푸르나가 만든 도시이다. 최근 트래킹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지역으로 한국 등산객들도 흔히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그 안나푸르나에는 2011년에 실종된 박영석 대장이 묻혀있는 곳이기도 하다. 히말라야 14좌와 7대륙 최고봉, 그리고 세계 3극점까지 정복한 인류 최초의 산악그랜드슬램을 이룩한 한국의 산악인! 


이제는 완전히 여행객이 되어 설래는 마음으로 설산에서 내려온 차갑고 뿌연 강물을 보며 달려간다. 안나푸르나로.....


가는 동안 강가에서 진행되는 화장식, 그 강에 목욕하고 빨래하는 현지인들을 보며 우리도 딜슐리강 차가운 설산의 냉기를 품은 뿌연 강물 속으로 뛰어 든다. 동강 굽이길보다 더 빠르고 폭은 넓다, 뿌연 강물 깊이가 10m는 족히 넘는다니 오히려 속이 보이지 않아 두려움은 없다. 파도는 피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서는 것이라 했던가! 파도를 넘고 찬물을 튀기며 마냥 동심으로 돌아가 그간의 시름을 잊는다. 


장장 10시간 덜컹거리는 버스로 이동을 한 후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샹글리라호텔로 방을 배정 받고 몸을 누인다. 여기가 죽지 않고 배고프지도 않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히말라야속 이상향 진짜 샹그릴라인가 ? 내게는 진짜 춥지도 배고프지도 덥지도 않고 딱 좋은데 비몽사몽간에 아침이 밝아온다. 



2016년 8월1일 (월)


안나푸르나 의 뜻이 full of food 즉 풍요로운 음식이라 부른단다. 대지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히말라야의 엄마산이다. 아침 하늘은 잿빛에서 먹색으로 또 다시 희붐하니 변색하며 비를 흩뿌리다 거두길 거듭한다. 안나푸르나는 그 너머 어디선가 아득하다. 


포카라 탐방의 첫 행선지는 세계평화공원으로 정상에서 페와호수 위로 내려앉은 안나푸르나의 연봉을 보기위해 4대의 토요다 승합차에 나눠 타고 다랭이논이 펼쳐진 고불 길을 오른다. 


안나푸르나 지역은 에베레스트 지역과 함께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맥을 구성하는 산군이다. 만년설로 새하얀 안나푸르나 주봉8,091m을 비롯해 안나푸르나Ⅱ7,939m, 안나푸르나 남봉7,219m, 마차푸차르 6,998m 같은 고봉준령이 불쑥 잇따르며 수직의 위용을 과시한다. 산 좀 탄다 싶으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4,130m나 마차푸차르 베이스캠프MBC 3,700m로 방향을 잡는다. 시간, 체력, 경험 모두 충분치 않을지라도 사랑코트 1,592m나 푼힐 3,210m 같은 전망대가 있으니 안나푸르나 조망은 어렵지 않다. 관건은 언제나 날씨다.


세계평화공원에서 내려다보는 페와 호수는 우기 내내 내린 비로 뿌연 흙탕물이 가득하다. 하얀 설산이 내려앉아 겹으로 비치는 모습을 기대하지만 그렇게 헤프게 자신을 보여줄 여신이 아닌 모양이다. 안나푸르나의 품에서 마차푸차레(물고기 꼬리)가 페와 호수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은 ‘힌두의 대서사시’ 출산과 생명의 출발을 상징하는 장관을 볼 수가 없으니 그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헷갈린다. 


다음 탐방지는 데이비스 폴이다. 폭포라면 높은 산정에서 떨어지는 비류직하를 상상하지만, 이 폭포는 페와호수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가 갑자기 뻥 뚫린 땅속으로 떨어지는 조금은 괴상한 폭포다. 석회석을 뚫고 생긴 동굴로 페와호의 물줄기가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은 장관이다. 1960년 스위스 관광객인 데이비스의 아내가 폭포 속으로 빠져 실종된 후 폭포의 이름을 데이비스로 하기로 합의를 했다니 사연치고는 좀 떨떠름하다.


산 아래서 패와 호수의 수평선을 바라보며 뿌연 흙탕물 속에서 복작대는 배들과 웅장한 설산아래 소박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본다. 네팔 아니면 구입할 수 없는 물건과 음식을 덤으로 즐긴 후 카트만두 쌍발기에 몸을 싣는다. 일생 진짜 한번은 안나푸르나의 뽀얀 자태를 마주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아쉬움을 뒤로하며 카트만두로 돌아간다.


2016년 8월 2일(화)


2015년 4월 네팔을 흔든 강진은 수도 카트만두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생명과 문명이 한순간에 스러졌다. 시간은 흘러 삶은 일상을 되찾았고 처음 만난 카트만두는 뽀얀 먼지와 자동차와 버스 오토바이의 무질서함이다. 지진의 흔적인지 원래 그런 모양인지 모두 낡고 붉으래한 빛의 벽돌집이다.


 지난밤 포카라에서 카트만두로 이동하여 저녁에는 잠시 타멜시장을 둘러보았다. 이어졌다 끊어지고 다시 돌아가는 전통골목은 활기가 넘치고 골동품과 과일이며 옷가지며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물품으로 빼곡하다. 


 여행이란 또 다시 못올 것 같은 아쉬움 때문인가? 하나라도 더 보려는 본능이 발동하는 것 같다. 그래도 네팔을 왔으면 에베레스트는 보아야지 하던 기대는 희망자 6명을 모아 새벽 5시에 히말라야 산악비행기를 타고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히말라야 연봉을 탐방하였다. 구름을 뚫고 접근한 에베레스트는 그야말로 환상과 엄숙함 장엄함의 연속이란다. 게으른 필자는 직접 비행을 하지 못하고 전해들은 이야기다. 


오전에 두 곳의 사원을 탐방하고 오후 6시 트리부반 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돌아가는 일정만 남았다. 네팔의 옛 왕국들은 카트만두 벨리로 불렸던 카트만두 분지 일대를 본거지로 삼았다. 카트만두, 박타푸르, 파탄 왕국이다. 왕궁과 함께 네팔 전통 건축물이 보존돼 있어 가치가 높다. 유네스코도 일찌감치 그 가치를 인정해 네팔의 8개 세계문화유산 중 석가모니의 탄생지인 룸비니를 제외하고 모두 카트만두 벨리에 있다. 이러니 카트만두 여행은 곧 세계문화유산과의 동행일 수밖에 없다.


먼저 찾은 스와얌부나트 사원은 2,000년 역사를 지닌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사원인데, 힌두교 양식도 보태져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300여 개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하얀 돔과 황금빛 첨탑이 눈부신 스투파가 압도했다. 순례자들은 스투파를 시계 방향으로 돌며 의식을 치렀고, 한 번 돌릴 때마다 불교 경전을 한 번 읽은 것과 같다는 '마니차'는 멈출 틈이 없었다. 스투파에 새겨진 '부처의 눈'은 신성한 눈빛으로 카트만두 시가지를 내려다본다. 


두 번째 찾은 곳은 네팔 힌두교 사원을 대표하는 파슈파티나트 사원이다. 네팔 최대의 힌두교 사원이자 성지인데, 외지인에게는 네팔 힌두교인의 장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장소로 더 의미가 있다. 사원 앞으로는 인도 갠지스 강으로 연결된다는 바그마티강이 흐른다. 살아서는 여기에서 몸을 씻고 죽어서는 이곳에 뿌려지는 게 힌두교도의 종교적 소망이라고 한다. 강둑에 늘어선 화장시설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장작불이 꺼지면 바그마티강에 뿌려지겠지, 누군가의 마지막 소망이 이뤄지고 있는 그 순간, 어린 소녀는 그 강에서 머리를 감고 소년들은 금붙이라도 찾을 양으로 자맥질을 멈추지 않는다. 엄숙함 보다는 그냥 일상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이 늘 흘러가는 강물처럼…….


시간이 주는 조급함 때문인지 쫓기듯 역사와 문명의 현장을 두어 시간 만에 휙 둘러보고 트리부반 공항에 도착하였다. 대합실은 외지로 나가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도시와 공항은 네팔이나 한국이나 삶의 전쟁터임에 틀림없다. 한 해 한국의 취업비자를 받기위해 65,000명이 지원해서 4000명이 5년 체류비자를 받아 경인지방 중소기업 노동자로 진출한단다. 겉으로는 평화롭고 행복지수 높아 보이는 여유로운 나라지만 삶이란 그렇게 녹녹치가 않은 모양이다. 


9박 10일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도망치듯 떠나온 대한민국과 와이파이 존을 찾아 접속을 시도한다. 능력보다 쉽게 얻는 물질의 과잉과 진정성 부족한 선택의 부작용으로 늘 힘들고 허겁지겁 살기만 해왔구나 싶다. 적절히 배설하고 가볍고 소박한 행복을 찾아보리라. 생각뿐이 될지 모르지만 다시 복잡한 도시로 본능처럼 돌아간다. 


 ― 141차 콤스타 한의약 해외의료봉사를 준비해 준 많은 분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같이 본 추억 일일이 이야기로 담아내지 못한 점 짧은 글재주를 탓하며 쉽게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올리듯이 쓴 개인적인 이야기니 너그러이 봐주시길…….